최민식, 전도연 주연 <해피엔드>(1999년)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납득하기 어려운 영화라고 한 유전자감식업체 대표는 광분했다. 여성인 그녀는 유부녀다. 직장 다니는 남편과 슬하에 자녀 두명을 낳았다. 그런 그는 <해피엔드>는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여전히 참을 수 없는 작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메가폰을 잡은 영화감독의 심오한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비꼬기도 했다. 사연인즉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면 왜 꼭 남편에게 살해당해야 하느냐는 것. 그녀에 따르면, 영화, 드라마 등에서 부인은 남편이 다른 여성에 눈을 돌려도 대부분 용서하거나 이혼으로 끝나지만, 반대로 아내가 배우자 아닌 애인을 만나면 결말을 불행하게 그리는 것 같다고 했다.

“여자는 바람 피면 죽는다?”

한 네티즌은 영화 <해피엔드>의 감상평을 이렇게 올렸다. “뭐야? ‘여자는 바람피면 죽는다는 거야?’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그렇게 죽을죄인가?”

정지우 감독의 <해피엔드>는 전도연의 파격적인 노출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내용은 아내의 불륜으로 인한 끔찍한 파행을 그린 치정극이다.

내년 봄 결혼을 앞둔 직장인 김모(30)씨는 “백년해로를 약속한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성과 살을 섞고 정을 통했다면 용서받지 못할 행동임은 분명하다”면서 부부의 약속을 깨는 불륜을 용납할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그러나 남성(남편)이 아닌 여성(부인)이 참혹하게 살해당한 장면은 찜찜하기 그지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리곤 믿었던 남편이 불륜을 저질러서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한국영화가 있었는지 생각 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다. 실제 그런 사건은 있었어도 영화는 아마 없을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한 유전자감식업체 대표 역시 같은 의견이었다. 그런 그의 분노는 한 재판부의 판결을 뒤늦게 목도하고 폭발했다. 아내를 살해한 남편의 형량이 예상을 깨고 중형이 아니라는 것. 아무리 그 부인이 불륜을 저질렀어도 소중한 생명을 빼앗은 죄값치곤 현저히 낮다는 게 그녀의 강한 불만이다. 물론 법조계 종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주관적 판단에 불과하다고 단서를 달기는 했다.

인천지법은 지난 9월 초, 불륜을 저지른 아내를 살해한 혐의(살인 등)로 구속기소된 A(45)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부인인 피해자가 불륜을 저지르고 가사를 돌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 목 졸라 살해했다”며 “살인은 어떠한 사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므로 피해자의 잘못과는 별도로 엄정하게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건발생의 배경에 대해선 이례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부인의 끝없는 불륜 관계로 인해 판사도 사람인지라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노골적인 불륜 행각 등으로 1년 가까이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던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가정을 지켜줄 것을 요구했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격분한 나머지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를 살해한 직후 수사기관에 자수하고 잘못을 깊이 뉘우치는 점 등을 참작해 징역 5년을 선고한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대해 대표는 “아마도 그 부인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은 된다. 무슨 죄를 저지르든 정상참작이 가능할 수 있어서다”면서도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죽인 만큼 그에 대해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 판결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사실 1심 재판부가 내린 형량은 중범죄인 살인죄임을 감안하면 무겁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법조 관계자는 (너무 낮아) 이례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즉, 법원이 피고인의 정상을 최대한 참작한 것으로 풀이됐다.

한편 과거 자신의 6촌 동생과 바람 핀 아내를 죽인 남편은 징역 10년의 죄값이 최종 확정됐었다. 부부의 성관계 중, 망자가 남편의 이름이 아닌 불륜남의 이름을 불렀던 것이 결국 살인으로 끝났다. 사건발생 수개월 전부터, 남편이 이들의 불륜을 알고 양자 모두에게 잘못된 만남을 끝내기를 종용한 사례가 반복됐다. 이는 검사도, 판사도 명백히 인정한 대목이다. 그렇다고 살인이 면죄부가 되는 건 결코 아니었다.

경찰조사에서 피고인은 자신의 아내와 6촌 동생의 끈적끈적한 관계를 토로, 대중의 이목을 샀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직접적인 확인이 불가능했다. 때문에 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사의 뜨거운 법정공방이 예상됐다. 이는 진위여부에 따라 형량이 달라질 개연성이 높아 재판의 핵심 키워드였다.

그러나 이는 싱겁게 끝났다. 피고인의 부인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6촌 동생이 모든 걸 인정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며 뒤늦게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피고인은 범행 직후 곧바로 112로 자수한 점은 정상참작이 됐다. 그러나 망자를 살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점에 때문에 재판부는 형량을 선고하면서 이 부분에 대한 지적을 분명히 했다. 참고로 피고인의 변호사 측은 과실치사로 징역 3년을 기대했으나 이는 단순 기대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