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때부터 이혼하기 전까지 15년 내내 매일 싸웠습니다. 그러면서도 서로 네 탓이라고만 여겼습니다. 아내나 남편인 나나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거나 내 책임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죠.”

충남 천안시에 사는 이길래(45·가명) 박숙자(42·가명)씨 부부. 두 사람은 결혼 직후부터 계속된 부부싸움 끝에 서로 갈라서자고 합의,이혼했다가 2년8개월 만에 재결합한 흔치 않은 인생사의 주인공이다.

결혼→이혼→재결합. 눈물겨운 드라마의 주인공은 엄밀히 말해 부부가 아니라 남편이었다. 박씨보다는 이씨가 더 심한 불만투성이였던 것. 그는 ‘절름발이 결혼생활’이라며 짜증을 내기 일쑤였다.

“남편은 신앙이 뜨거운데 아내는 그렇지 않아. 한쪽은 완벽한데 한쪽은 그렇지 않아. 나는 따뜻하고 열려 있는데 당신은 그렇지 않아.…”

두 사람이 이끄는 가정 경제는 탄탄했다. 이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줄곧 유능한 건축설계사로 활동해 왔다. 부인 박씨도 신제품 화장품을 개발,특허까지 내는 등 단단한 사업체를 운영했다. 두 사람 다 크리스천이었다. 이씨는 신앙이 뜨거웠다. 박씨도 모태신앙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아 기르는 동안 이들은 하루도 싸우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너무나 불행한 부부였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부부는 발걸음도 당당히 결혼식을 올렸지만 금세 티격태격하게 됐다. 이들은 결국 서로의 성격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혼 14년 만인 2002년 부부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잦은 부부싸움으로 가정생활 자체가 지옥이었죠. 아이들에게 참 부끄러웠습니다.”

당시 이혼 이유에 대해 이씨는 “혼자 왜 매일 교회에만 사느냐는 아내의 볼멘소리를 듣는 게 괴로웠다”며 “하나님 중심,교회 중심으로 사는 선량한 남편을 이해 못하는 아내의 믿음이 너무 얄팍해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만약 재혼하게 되면 믿음이 나만큼 뜨거운 사람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아내와의 결혼생활은 치가 떨릴 정도였고,이혼한 뒤 아내와 재결합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고 토로했다.

박씨는 박씨대로 이혼이 오히려 반가왔다. 그녀는 “남편은 늘 자신이 참된 신앙인이라고 말했지만 아내와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철저히 자기 중심적이었고 편협했다”며 “남편은 자신이 최고라고만 생각하는 답답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이혼과 재결합 과정을 겪고 가정을 회복한 지금에 와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이씨가 부부관계 회복에 관한 결정적 전기를 맞은 계기는 2004년 5월.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부부관계를 피조물인 인간이 함부로 끊어버려 성경 말씀을 어긴 데 대한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 없었던 때였다. 그는 지구촌가정사역연구원 주최로 강원도 태백에서 열린 내적 치유 프로그램에 참가했다가 반성할 기회를 가졌다. 훈련원의 워크숍에서 들은 “당신은 다 잘했고 아내는 다 잘못한 것이 결코 아니었을 것”이라는 말이 그를 계속 따갑게 채찍질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아내보다 훨씬 못난 존재였고,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린 시절 늘 지켜봤던 부모의 싸움 방식을 답습해 부부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또한 아무런 자성도 없이 토끼 같은 세 자녀에게 행복 대신 상처를 대물림하려 하고 있는 것도 다름아닌 자신이었음이 드러났다.

“이혼한 뒤 한동안 자유롭고 편해서 끝까지 버텨보려고 했죠. 그러다 다른 부부,다른 가정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던 게 행운이었나봅니다. 우리 가정보다 훨씬 불행한 가정이 있음을 알게 됐고 나아가 나도,우리 가정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으면서 자신감을 회복했습니다.”

이씨는 곧바로 박씨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조마조마했지만 한참 시일이 지난 뒤 아내에게서 반가운 답장이 날아왔다. 이어 오붓한 자리를 만들어 예전과 전혀 달리 따뜻하고 열린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부부는 이 자리에서 자신들 사랑의 결정체인 세 자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들이 끝까지 책임지고 양육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부부는 이제 이혼 문제에 관해서는 분명히 입을 모은다. “함께 노력하면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으므로 자녀가 있건 없건 절대 이혼해선 안 된다”고 전제한 이들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부부생활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꼽았다.

두 사람은 “특히 남녀간에 심리적,생리적,성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줘야 가정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서 “부부 두 사람만으로 화해하고 극복하기 쉽지 않다면 종교단체나 사회단체가 운영하는 가정 회복 프로그램 등에 참여,함께 공부하는 것도 파멸 위기에 처한 부부의 내적 치유를 위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생활기획팀=김혜림 팀장,정진영·김경호·한병권 편집위원 li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