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주부의 우울 그 자기 찾기 과정◎

40줄이 넘어가면서 주부들은 쉽게 우울증에 빠져들게 된다. 특히 생명의 기운이 넘쳐 나는 봄에는 자기의 처지가 더욱 초라해 보인다. 이미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 나이를 훌쩍 넘겨버린 청소년 자녀들은 더 이상 엄마 품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의 품보다는 또래들과 어울리거나 인터넷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들도 얼굴을 마주보기 힘들다. 사이버 시대를 맞아 새로운 정보와 사회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전개되는 경쟁사회에서 버텨나갈 수 없다. 그래서 남편들 역시 아내를 돌아봐 줄 여유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40줄의 주부들은 그 동안 가족들과 엉겨 지내면서 자신을 돌아볼 경황이 없었음을 알게 된다. 자신에게 그것은 전부였고, 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또한 인정한다. 그러나 이런저런 변화들을 한꺼번에 맞닥뜨리면서, 전혀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레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되면서 주부들은 정신적 혼란을 겪게 된다.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자아를 발달시켜 나왔던 관계내적 자아로부터 분리되기 위해 긴 터널을 빠져 나와야 한다. 이제는 그런 자신을 돌봐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중년기 주부들의 우울이다. '이제는 나를 보호해 주세요', '이제는 나를 존중해 주세요', '이제는 나의 가치를 인정해 주세요' 하는 최초의 외침인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주부들은 현실감각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즉, 자기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잘 버티고 지내왔던 자신의 인생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자책으로부터 합리성, 당위성을 찾아야만 한다.

또 가족들은 우리를 위해 헌신해준 아내, 어머니로서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그가 스스로의 자아를 찾아나갈 수 있도록 애정어린 관심을 갖고 격려하고 지지해 주어야 한다. 진정한 자기이해와 자기사랑만이 중년의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될 테니까.

박정희/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 책임연구원·가족학 박사 (02)597-5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