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기라는 장애

달콤한 신혼시절이 계속되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권태기`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기다리고 있어서 결혼 생활은 큰 고비를 맞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게 설레고 들뜨던 마음은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지 않고, 심지어는 짜증까지 나곤 한다. 신혼시절이나 연애시절의 달콤함으로 되돌아가려고 해 보아도 어지간히 해서는 잘 되지 않는다. 권태기는 불가피할까?

`살다 보니 이전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모습들이 나타나는 거예요. 제가 속았다는 기분도 들더군요. 그래도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리 말을 해 보아도 오히려 관계만 나빠지는 거예요. 이제는 지쳐서 더 무엇을 해 볼 엄두도 나지 않아요. 아이들이 있으니까 아이들을 위해서 사는 거지요...`

`참 외롭다는 생각도 듭니다. 전혀 저를 이해하려고 들지 않아요. 결혼 전에는 그래도 관심이라도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니 신혼시절에도 좋았는데, 갈수록 관심이 멀어지는 것 같아요. 물론 저도 조금 시들해지긴 했지만, 아내에게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 속상한 일입니다. 조금은 창피하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들어보면 다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다. 여자의 경우에는 남편보다는 아이에게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남자의 경우에는 일이나 다른 인간관계에 더 관심을 쏟게 되면서 부부간의 애정은 일차적인 관심사에서 어느덧 밀려 버리는 것이다. 권태기의 가장 큰 특징인 `관심의 부족`이 초래되는 이유는 이렇게 부부 각자가 다른 듯 하다.

부부는 촌수로 치면 무촌(無寸)이다. 부모와 자식이 일촌이고 형제간이 이촌임에 비해서 부부는 전혀 촌수가 없다. 그만큼 틈이 없이 가까운 사이라는 말도 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혈연으로서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남남이라는 말도 된다. 이혼이라도 해서 헤어지면 바로 남남이 되지 않는가. 관습적으로도 부부는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먼 사이`인 셈이다.

다른 혈연관계와는 다르게 부부는 인위적인 관계이다. 둘 사이에 사랑과 관심이 있으면 일심동체라고 불릴 만큼 가장 가까운 사이이고, 관심과 사랑이 없어지면 사실상 전혀 관계없는 남남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저절로 되지는 않는 법이다. 그만큼 정성과 공을 들여야만 행복한 관계의 유지가 가능한 법이다.

부부관계가 인위적인 것이니 만큼 그 관계를 유지하는 핵심인 사랑과 관심을 위협하는 권태기야말로 가장 위험한 장애일 수 있다. 실제로 많은 부부들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 사랑으로 인해 힘들어 하다가 각자가 다른 이유들을 찾아서 포기하면서 가정을 억지로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당연히 그러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결혼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부부간에 사랑이 식고 서로간에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만 남는 법이라는 생각으로 기대하지 않으면서 사는 것이 현명하다고 까지 생각하는 것 같다. 계속 상대의 관심과 사랑을 기대하면서 다투고 갈등하는 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해서 아예 사랑과 관심을 포기해 버리면서 안정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일리는 있으나 이 역시 현명한 방 법은 아닌 것 같다. 행복한 결혼생활은 언제나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 이유가 있는 법인데...

문제가 있으면 거기에는 항상 그러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문제와 그 원인을 정확하게 간파했을 때 가장 합리적이고 적절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권태기에도 반드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상대에 대한 관심의 감소, 느낌의 변화, 피로감의 증대, 짜증스러워지는 것, 탈피하고 싶은 욕구의 발생... 등이 권태기의 증상인데,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면 계속 다투며 억지로 살거나 달갑지 않은 생활을 꾹 참고 하거나, 아니면 체념하면서 다른 곳에서 기대를 가지면서 살수밖에 없다.

어떠한 문제이든 그 원인을 잘 살펴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고집 하는 경향`이 있기 마련이다. 무엇인가를 계속 붙들고 놓지 못하기 때문에 모순과 갈등이 생기면서 괴로움이 발생하는 것이다. 세상은 한시도 머무르지 않고 계속 변하고 있는데, 무엇인가를 붙들고 놓지 않으면 당연히 갈등이 발생한다. 또한 일단 생긴 갈등도 집착이 계속되면서 점점 부풀어져서 어찌해볼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와 그 문제가 계속되는 데에는 이처럼 반드시 `집착(執着)`이라는 심리적 과정이 개입되어 있다.

권태기는 무슨 집착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 람은 계속 위안과 즐거움을 주는 대상을 기대할 것이고, 자기에게 끝없는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을 기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한없이 편안한 관계를 기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 형태가 다르게 나타나더라도 권태기를 느끼게 되는 마음에는 공통점이 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 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더 우선하고 있다는 점이다.

권태기의 가장 중요 특징인 `지겨움`이라는 감정을 살펴보자. 어떠한 대상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데 계속 접해야 한다면 그 대상은 편할 수는 있어도 호기심이 일거나 시선이 가지는 않는다. 이 때 정신적으로 지치거나 힘이 든다면 바로 `지겹다`는 느낌이 생긴다. 즉 지겨움이란 `알고 있어서 더는 관심이 가지 않는 대상`에게 일어나는 마음이다. 똑같은 강의를 계속하거나, 똑같은 역할을 반복해서 하면 타성에 빠지는 경우에서 이러한 예를 단적으로 볼 수 있다.

지루하거나 지겨운 느낌이 계속되면 탈출구를 찾고 싶어진다. 새로운 취미를 찾거나 일상에서 멀리 떠나고 싶거나, 관심이 가는 새로운 대상을 만나고 싶은 등등의 마음들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람피우는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상대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설사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않더라도 내면적인 갈등요인으로 작용해서 삶을 피곤하고 지치게 한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는 한 생각이 이러한 현상들을 초래하는 것이다.

이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해서 사물을 바라본다. 그래서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인데 뭐 신기할 것이 있나`라고 판단하면서 마음속에서는 늘 `별로이다`라는 느낌을 갖는다. 한편으로는 늘 `무언가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이 있을 텐데...` 라는 기대를 가지면서 망상을 좇는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내가 모르고 있다`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사람이다. 내가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은 늘 호기심을 잃지 않는다. 늘 변해 가는 현상을 자기 생각대로 꿰어 맞추어 `알고 있다`, `별로 이다`라고 쉽게 판단해 버리지 않고, `이게 뭘까?`, `이것이 어떻게 될까?` 라며 현상을 주시한다. 마음 속 잣대를 고정시키지 않았기에 늘 새로운 현상을 늘 신선하고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극복하지 못할 장애는 없다

`상대에 대해 실망했다`는 것도 그 내막을 알고 보면, `자기가 기대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어리석은 사람은 늘 마음속에서 기대하는 모양을 만들어 내고, 자신이 만든 이 모양에 맞추어 사물을 바라보기 때문에 흥분도 잘 하고 실망도 잘 한다.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이 마치 전체인 것처럼 착각하면서 뛸 듯이 좋아하다가도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크게 낙심해서 실망해 버린다. 이를 반복하면서도 이것이 자기 마음이 만들어내는 허상의 놀음이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 하고 자기의 고집과 망상을 놓지 못한다.

현명한 사람은 실망도 만족도 다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잘 안다. 그래서 마음에 든다고 해서 정신이 팔리는 법도 없고,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크게 실망하고 좌절하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이 일으키는 마음과 현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그것을 현실적으로 조절하는데 힘쓸 뿐이다.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고집이나 망상이 발견되면, 즉시 이를 참회하고 놓아버림으로써 마음의 평정과 자유를 얻는다.

권태로움은 어떠한 부분에 마음이 고정되어서 생생한 의욕이 일어나지 않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권태기라고 하는 것은 `내가 이미 너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다. 너에게는 더 이상 관심이 가지 않는다`는 무의식적인 판단이 자동적으로 작용되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알아차려서 대책을 취하면 극복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해서 자신에게 속으며 계속 자신의 `알고 있다`는 의식을 고집하다 보면 점점 수렁에 빠져들 뿐이다.

세상에 극복하지 못할 장애는 없다. 만약 극복하지 못 하는 장애를 경험하고 있다면 당장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내가 나도 모르게 무엇인가를 고집하면서 나를 장애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그 생각을 알아서 바꾸면 장애는 극복된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고집하고 있지?` 라고. 이렇게 생각을 바꾸는 순간 문제는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자기의 생각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자신을 바라볼 줄도 알게 되는 것이다.

문제에 대해서,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 또는 대안에 대해서도 고집하면 눈이 멀고 만다. 열린 사고로 살펴볼 줄 알아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 `내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그 바램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면, 문제를 일으키는 자기의 고집을 바라볼 수 있다. 고집을 버릴 것인지 행동을 바꾸어 원하는 것을 이룰 것인지는 이치를 잘 생각해서 선택하면 된다.



늘 새롭게...

`나는 나의 배우자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옛말에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다. 과연 나는 내 인생의 반려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만약 `잘 알고 있다`고 판단이 된다면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가?`라고 다시 반문해 보자. 혹시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상대를 저울질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잣대를 놓고 바라보아야 한다.

진정으로 자신의 잣대를 놓고 상대를 바라보면, 잣대를 가지고 바라보던 그 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보일 수도 있다. `늘 나를 못마땅하게만 보는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호감과 관심을 지나칠 정도로 가지고 있어서 늘 실망을 하고 있는 사람`이 보일 수도 있다. `별로 매력도 없고 따분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나와 가족들을 위해서 헌신하고 있는 아름다운 보살`이 보일 수도 있다.

세상을 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지 못 하는 사람은 이미 `고목처럼 시들어 버린` 사람이다. 그렇지만 고목에서도 꽃이 필 수 있다. `관점 바꾸기`가 이러한 기적을 이루어낸다. 단지 기존의 굳어버린 관점과 사고를 놓고 새롭게 바라보는 행위만으로도 마음에는 아름다운 꽃이 필 수 있다. 나의 모든 생각을 다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를 보면, 세상은 이전에 알고 있던 `그저 그런 곳`이 아니다. 늘 새로운 변화 속에서 아름답게 장엄되어 있는 극락정토이다. 내 눈이 멀었음을 알아야 하리라. 내 생각이 굳었음을 알아야 하리라.

부부로 인연을 맺고 부부생활을 하는 것은 참으로 수행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공부처이다.

부부만큼 서로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쉬운 대상도 없기 때문이다. 늘 함께 살면서 대하는 사람에 대해서 항상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 무엇을 새롭게 대하지 못하겠는가! 그러므로 권태기는 일종의 사자후(獅子吼)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고정된 관점에 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경고음인 것이다.

수행의 관점에 서서 바로 보게 되면, 권태기라고 하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데 뭐` 하는 망상이 지배하는 시기이다. 이 한 생각을 내려놓고 `내가 모릅니다. 진정 바르게 알고자 하겠습니다` 하는 참회와 발원을 하면, 부부생활이 가장 확실한 수행의 장이 된다. 권태기라는 ` 자상한 가르침의 순간`을 헛되이 하지 않는 현명한 불자가 되자. 지루함과 피곤으로 상처받으며 굳어버린 우리의 마음에 다시 새롭게 바라보는 연습을 통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자!

[출처]www.counpia.com / 방기연 소장(그래! 심리상담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