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을 꿈꾸는 남자들"


아무리 서로 죽고 못살아 한 결혼이었을 망정 일단 가정을 이루고 나면 남자나 여자를 막론하고 서로들 적응하는 과정에서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릴 것이다.

그도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부부는 각기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세상물정에 어두운 채로 부모들의 보호를 받으며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자라왔던 탓이 크다.

그러한 사람일수록 자존심이 강하고 타협을 싫어하는 경향이 강하기 마련인데 더군다나 가정운용의 주도권마저 달려있으니 이것이 곧 사랑이라는 "양의 탈을 쓴 늑대" 와 비유할만 하지 않는가.

특히 여자들은 아주 사소한 것들을 트집잡아 잘도 물고 늘어진다. 남편들이 보기에는 양말을 세탁기 안에 넣지 않는다고 해서 어디가 덧나는 것도 아니고, 신문보다가 좀 어질러놓았다고 집안이 폭격 맞는 것도 아니다.

밥 먹을 때 소리 내지 마라, 샤워할 때는 바닥에 물 흘리지 않게 반드시 욕조안에서 해라, 담배는 집안에서 피우지 마라, 밤에 꼭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자라, 속옷은 꼭 하루에 한 번씩 갈아입어라 등등 대단하다.

누구든지 남자라면 아마도 신혼 초에 이미 말빨로는 여자를 당할 수 없다는 걸 실감하였을 것이다. 혼자 실컷 떠들게 놔두던가 아니면 연애시절부터 거슬러올라가 생각지도 못했던 과거사의 파노라마를 듣던가 해야한다.

그것도 처음 몇번은 들어줄만 했다. 하지만 버룻이라도 들었는지 조금만 궁지에 몰리면 다시금 지긋지긋한 레파토리가 펼쳐진다. 아무리 참을성 있는 남자라도 똑같은 이야기를 그것도 기억에 없는 무조건 남자만 일방적으로 잘못했다는 이야기를 골백번 들으면 진저리가 쳐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간 살아온 인생에 대한 회의가 들면서 '내가 왜 결혼했을까' 또는 '이 여자는 나와 안 맞는다.' 등등의 온갖 생각이 차츰 머리를 쳐들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야흐로 권태기 진입신호가 아닌가.

그렇다고 이 정도만으로 남성들의 외도를 합리화하려는 것은 아니고 다만 원인제공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원인없는 결과가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위에서 든 예들은 사실 아주 사소한 예일 뿐이다. 자식이 태어나서 아파도 남자는 회사에 가야 하고, 휴일에는 꼼짝없이 가족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등의 생활이 단조롭게 반복되다 보면 언뜻 총각시절이 그리워질 때도 있는 것이 남자다.

결혼후 만약 방이 두개짜리 집에 살림을 차렸을 경우 보통 남편에게도 '서재'라는 명분의 방이 하나 주어진다. 책상 하나만 달랑 갖다놓은 공간이라 할지라도 한번씩 혼자 있고 싶을 때 내 몸뚱이 하나 온전하게 뉠 수 있는 방인 것이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아이 한둘 낳고 이사 두어 번 하다보면 어느날 갑자기 남편의 방은 오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만다. 남편이라는 존재는 돈이나 벌어들이는 기계 정도의 위상으로 추락하고 집안은 오직 아내와 아이들만의 공간으로 바뀌어 버린 탓이다.

'나도 방을 하나 달라'고 하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뜨악하게 쳐다본다. 이 좁은 집에서 그런 말이 나오느냐는 듯이 째려보거나, 그 나이에 공부를 할 것도 아니고, 기껏 해봐야 인터넷 서핑일텐데 이상한 거나 훑고 다니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며 면박이나 당하기 일쑤다.

아마도 집에서 자신만의 방과 책상을 가진 남자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신문이라도 볼 수 있는 장소는 욕실의 변기나 낡은 소파에서다. 결국 남자가 뭘 하는지는 온 가족들이 잘 파악하고 있다.

남자는 적어도 집안에서는 비밀이 보장되지 않는 공인인 셈이다. 강아지와 소파를 다투어야 하는 사이이고 제풀에 성나면 각각 제방으로 흩어져 들어가는 처자식들을 멀거니 바라보아야 하는 존재다.

아내에게는 집이 자신의 보금자리로 여겨지겠지만 남편들도 과연 그럴까. 아내 위주로 재편된 공간을 보며 남편은 스스로 자신이 찬밥이라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아마 남자라면 누구나 비상금으로 전셋방값 정도쯤 있었으면 하고 바랄때가 있다. 소외된 자신의 몸뚱이를 가족들이 모르는 공간에 높혀 쉬게하고 싶은 충동을 받을 때가 있다. 직장만 아니라면 훌훌 털고서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적어도 마흔 쯤 된 철든 사내라면 심각하게 자신이 가정 내에서 어떤 존재인가 라고 스스로 되묻게 된다. 그러다가 누군가 조금 관심을 가져주면 그게 고마워 바람앞에 흔들리는 등불처럼 가련한 처지로 전락한다.

몰래 짓밟힌 남자로서의 자존심도 되찾고, 내 집 같지도 않은 집에 꼭 들어가지 않아도 될 핑계로 썩 훌륭하지 않은가. 이처럼 남자들도 여자나 마찬가지로 누구나 불륜을 꿈꾸게 된다.

미국의 '폭스 텔레비젼'에서는 결혼을 굳게 약속한 네 쌍의 젊은 남녀를 백사장과 울창한 숲이 펼쳐진 환상적인 섬에서 26명의 다른 독신 남녀들과 함께 지내게 했다. 그들은 모두 제각기,

"저렇게 아름답고 관능적인 여자와 살아봤으면", "세련된 매너와 우람한 체격의 저 남자를 남편으로 만났으면", 하면서 심리적으로 자신의 약혼자를 향해 회의적인 생각과 함께 점점 뜨악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휴가가 끝났을 무렵, 커플들은 서로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긴 채 '파경의 항구'로 귀항한다. 한 남자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이제 내 인생은 망가졌어" 라고 울부짖고, 한 여성은 "처음에는 그저 게임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심각한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 "며 통곡하는 것이다.

누구나 이상형이 있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자신의 배우자를 제외한 이성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발정기에만 섹스를 갈구하는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언제나 '스탠바이' 상태인 것이다.

인간이란 끊임없이 주변을 탐색하는 고등동물이다. 탱탱한 몸매를 보면 은근히 훔쳐보고, 촉촉한 입술을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해진다. 집에서 늘상 보는 퍼진 마누라보다는 탱탱한 미모를 가진 여직원들이나 분위기 있는 여자들이 좋은걸 어찌하랴.

"결혼할 때는 엄밀히 말하면 여자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거 같아요. 그 나이에 뭘 알겠습니까. 그러다가 뭔가 좀 알 것 같은 나이가 되니까 세상이 온통 꽃밭이었는데 나만 그걸 몰랐다는 걸 느끼는 거죠. 아내보다 훨씬 나은 여자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많은지, 안 보이면 유혹을 못 느끼겠지만 눈앞에서 왔다갔다하는데 솔직히 안 흔들리겠습니까?"

보통 40대 남자들이 바람피우는 가장 흔한 이유가 비로 이것이다. 집안에서 하는 대화라야 고작 가정사가 대부분이다. 아이문제 돈문제 시댁문제 등등 모든 게 문제거리다. 기꺼이 기분 좋게 대화할 만한 성격은 아니다.

대화라고 하다보면 늘 신경전 아니면 큰소리가 오가는 싸움으로 끝이 난다. 이런 일상적인 대화말고 가끔은 '닭살 돋는' 대화를 하고 싶지만, 아내와 대화라도 하려고 운을 떼려고 하면 아내는 연속극 삼매경이 아니면 전화통을 붙들고 늘어지기 일쑤다.

만약 그도저도 아니라면 아내는 그밖의 시간을 대부분 활용하여 아이나 자신에게 소리를 지르는데 열중한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만나는 여자들 처럼 '우아한' 대화를 모른다. 영화가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책이 어떻고, 심지어 연속극을 이야기하더라도 격이 다른 것이다.

아내들이 아줌마 같은 모습을 혐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편들 역시 아저씨 같은 모습이 싫은 것이다. 누군가 자신을 매력적인 남자로 보아준다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심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본능인 것이다.

자! 자신을 아저씨, 혹은 애아빠로만 보는 아내와 남자로 보는 두 여자가 있다고 치자. 당신은 어떤 여자 앞에서 더 잘 보이고 싶겠는가. 남자들이 나이가 들수록 바람피우는 데 대해 죄책감을 덜 느끼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미 무늬만 부부일 뿐인 아내한테서 아무런 매력도 못 느끼는데 어떻게 살을 섞으며 살 것인가. 더군다나 남편을 남자로 생각지도 않고 돈 버는 기계쯤으로나 여기면서 여태까지 부려먹기만 했다는 생각만 하면 괫씸해지기 마저 한다.

이제 나도 할 만큼 했기 때문에 이쯤부터는 내 인생을 즐길 권리가 있다는 항변 앞에서는 별로 할 말이 없어진다. 중년남편들이 이정도에까지 내몰렸다면 도시 근교의 러브호텔이 번성하는 이유나 최근의 이혼율 급증이 수긍되지 않는가.

최근 타임지가 한국 태국 홍콩 싱가포르 필리핀의 혼외정사율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가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나왔다고 보도했다. 물론 조사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반대의견도 있었지만 그러나 일반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그럴 것이라고 수긍했다.

우리나라 성인들은 보통 10명에 6명은 바람을 피운다고 한다. 심지어는 나만 빼고는 모두 바람을 피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문 밖에만 나가면 전화방 노래방 PC방 비디오방 소주방 게임방 인터넷방 모텔방, 룸살롱등등 방(房)의 천국이 아닌가.

회식문화를 바꾼다고 해도 회식자리에서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엉뚱한 데로 샐 수도 있는 것이다. 노래방 게임방 나이트클럽 할 것 없이 대기조가 기다리고 있다. 대기조들은 남자들이 한눈을 팔려는 순간 파리지옥풀처럼 먹이를 낚아챈다.

아차 하는 사이에 끌려 들어가는 것이다. 이제 남편들의 그 다음 행보는 선택의 여지가 없게된다. 어떻게 하면 아내에게 들키지 않을까 잔머리 굴리는 것은 물론, 스스로에게는 실수로 치부하고, 어쩌다보니, 분위기에 끌려서 등등으로 자기의 행동에 대해 합리화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다보니 하룻밤의 장난, 혹은 술에 취했다 잠깐 정신을 잃었던 것으로 축소하는 것은 물론 만약에 이를 알게된 아내들의 반발을 외려 이상하게 생각하는 남자 무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