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사람 잡네 '쪘다 노이로제'

눈금에 몸맞추기 '빗나간 다이어트'

#1 직장여성인 김모(25)양은 체중계에 올라갈 때면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가슴을 졸인다.그리고는 눈금이 몇 백g만 올라가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점심 식사 후 동료가 권한 과자를 거절하지 못하고 먹은 자신이 원망스럽다.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던 그녀는 결국 변비약을 먹고 체중계 바늘이 원래의 몸무게를 가리키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2 대학생인 박모(23)양은 얼마 전부터 식사 전에 자신이 먹어야 할 음식의 칼로리를 계산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것도 모자라 그녀는 먹는 순서와 음식을 몇 번 씹어야 할지 나름대로 규칙도 정했다.

칼로리 계산이 안 되는 음식은 아예 손을 대지 않는다. 이제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자리로 생각되면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외식조차 기피하고 있다.

다이어트 숫자 강박증 환자'가 늘고 있다. 다이어트 열풍 속에서 몸무게나 체형, 칼로리와 같은 수치에 지나치게 매달리며 자신을 혹사하는 사람들이 급증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숫자 강박증은 폭식증이나 거식증과 같은 식사장애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다이어트에 몰두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경종이 되고 있다.

숫자 강박증 환자들의 특징은 끊임없이 모든 것을 수치로 계산하고, 숫자의 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점. 하루에도 몇 번씩 체중계에 올라가며 1백~2백g만 몸무게가 늘어도 전전긍긍한다.

불안증도 공통점이다. 체중이 1㎏만 늘어도 계속 증가할 것 같은 공포감에 시달리던가, 자신이 목표한 칼로리 이상의 음식을 먹으면 벼랑에 선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성격적인 면도 거론된다. 다른 강박증과 마찬가지로 완벽주의적이고 성취지향적인 사람에게 많다.

반면 열등감이나 부끄러움이 강한 사람에게도 흔히 나타난다. 문제를 맞닥뜨려 해결하지 않고 회피하다 보면 가장 편한 숫자에 위안을 삼으려 하는 것이다.

자신이 세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이를 수정하는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마음을 편하게 지켜주는 심리적 방어장치가 없어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붙인다.

날로 늘어가는 이런 환자는 시각 중심의 문화, 외모 지상주의가 만들어 낸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미소인 클리닉의 김준기 원장(정신과)은 "내면의 가치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데다 성과가 빠르게 나타나지 않는데 반해 숫자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바로 성과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숫자를 줄이기 위한 행동을 강화하게 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강박증 환자 중에는 하루 필요 열량의 절반인 1천 ㎈도 못미더워 영양실조 단계인 5백 ㎉까지 낮춰 가는 고행(?)을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

문제는 이러한 강박증이 체중 공포증과 같은 심리적 공황장애, 또는 식이(食餌)장애나 자신의 몸을 미워하는 신체 이미지 장애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

나눔클리닉의 이영호 원장(정신과)은 "수치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다 보면 체중조절에 실패할 때마다 자신을 비하하거나 자신감을 상실하며, 심할 경우 우울증으로 이어진다"며 "건강을 목적으로 시작한 다이어트가 대인 기피/건강 상실/사회 부적응이라는 폐해를 부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당신은 다이어트 숫자 강박증인가

(1) 식사 전 모든 음식의 칼로리를 계산한다

(2) 하루에도 체중을 여러 차례 잰다

(3) 아침에 잰 체중 수치에 따라 하루 기분이 좌우된다

(4) 체중이 1백g만 늘어도 죄책감, 수치심을 느낀다

(5) 정해놓은 것보다 많이 먹게되면 극도로 불안해진다

(6) 허벅지나 허리 굵기 등 신체 사이즈를 수시로 잰다

(7) 음식을 먹을 때 임의로 정해놓은 순서나 시간이 있다

(8) 조금 더 먹으면 다음 식사를 굶거나 운동을 더 해야 직성이 풀린다

(9) 운동을 할 때 꼭 지켜야 하는 횟수와 시간이 정해져 이를 못 지키면 매우 불안하다

(10) 시간과 관련, '운동 후 몇 시간 이내 먹으면 안 된다', 식후 몇 시간 내 잠자면 안 된다'와 같은 규칙이 있다

◇위의 사항 중 3개 이상에 해당하면 다이어트 숫자 강박증이 있는 것으로 의심할 수 있음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