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이혼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

최성애 박사 HD가족 클리닉 원장

가정이라는 끈을 아슬아슬하게 잡고 사는 한국 부부들의 현주소

“마음이 돌처럼 굳어버린 아내에게 어떻게 대해야 좋을까요? 이제는 얼굴조차 보기 싫다고 합니다. 빨리 이혼하자는 소리만 해요.” 필자의 클리닉에 상담의뢰를 한 어느 50대 CEO의 고충이다. “아내가 외도를 했는데....” 말끝을 어떻게 맺어야 할지 모를 정도의 극심한 혼란을 느끼며 남편 쪽에서 먼저 상담을 신청해 온 경우다. 가장으로서 가족의 문제는 되도록 집안에서 해결할 일이지 남에게 알리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 많이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또 그만큼 부부 문제가 절박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한국의 부부들이 가정이라는 끈을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잡고 사는지, 특히 남편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우스개 소리가 많다. 30대 주부들은 남편이 늦게 들어온다고 속상해 하고, 40대들은 남편보고 일찍 들어오라고 잔소리할 뿐 속으로는 좋아하고, 50대가 되면 남편이 출장 간다면 노골적으로 환영하고, 60대가 되면 아내 친구들이 집에 놀러올 거니까 남편보고 아예 밖에 나가 있으라 한단다.

남자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을지도 모른다. 30대는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분서주 하느라 집에 늦게 들어오고, 40대는 뒤쳐지는 실력을 인맥의 끈으로나마 잡아보기 위해 술자리에 억지로 참석하는 것이고, 50대는 불러주는 데 없는 초라한 신세랄까 봐 모임을 찾아 기웃거리는 것이고, 60대는 마누라 눈치보고 집에 있는 것이 불편해서 밖에서 빙빙 도는 것인데 어쩌면 평생 반려자라는 아내들이 남편의 마음을 그렇게 몰라 주는가 서글플 것 같다. 그러나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남편의 처절함을 알려주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예를 들어, 이사 가는 날 남편들은 이삿짐 트럭 운전석 옆자리에 미리 가 앉아 있는다는 둥 냉장고 속에 숨어 들어가 있는다는 둥... 혹시나 마누라가 자기를 버리고 떠날까봐 기 쓰고 따라붙었더니 그보다 한 수 위인 마누라는 고물 냉장고를 난지도 쓰레기 하치장에 버렸다는 농담이다.

이런 농담들에는 근거가 충분히 있다. 최근 통계청 자료를 보자. 이혼율이 2005년에는 40.6%를 기록하였으며, 다섯 쌍의 이혼 중의 한 쌍은 20년 이상 같이 산 부부들이다. 즉 황혼이혼이 급증한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결혼을 늦추거나 아예 동거를 하고 있으며 네 쌍의 결혼 중 하나는 재혼임을 감안하면 18.7%라는 황혼이혼율은 사실상 엄청난 비율인 것이다. 결혼생활을 10년, 20년 그럭저럭 잘 넘겼다고 마음 놓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한국 전쟁의 피바다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60년대 지긋지긋한 가난도 극복했고, 70년, 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의 최루탄 연기 속에서도 꿈쩍 안 했던 가정이 G10 가입을 코앞에 둔 2000년대에 들어와 어찌하여 이처럼 바람에 날아갈 듯이 흔들리고 있는지 불가사의하게 여기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혼수전쟁>이라는 책을 썼던 1993년에 이미 한국의 가정 붕괴를 예측했었다. 필자가 유독 선견지명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혼 선진국인 미국에서 27년 살면서 이혼의 생리를 너무 속속들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친하게 지내던 이웃집 부부가 갑자기 이혼하는 경우도 보았고. 고속 승진하던 동료 교수가 이혼 후 건강이 급속히 나빠지고 의욕이 떨어져 학교에서 ‘찬밥신세’로 전락하는 사태도 많이 보았다. 또, 이혼한 가정의 대학생들이 쉽게 무기력감을 느끼거나 대상 없는 분노와 전반적인 불안감에 힘들어하는 모습도 많이 보았다. 이혼한 사람들의 자녀들 역시 이혼하는 확률이 무척 높다는 통계는 학문적 연구결과를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 옆집을 통해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한국 가정에도 대재난이 올 것을 대비하여 심리학과 사회학을 가르치는 동시에 본격적으로 가족 치료와 부부 치료를 공부했다. 이미 이혼율 40~50%를 사반세기 겪어온 유럽과 미국의 대처법을 미리 배워두려고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와 시애틀의 가트맨 인스티튜드에 가서 전문가 훈련을 받았다.

부부 상담 받으려 필자를 찾는 사람들은 각계각층에서 성별, 학력, 지역, 소득수준이 다양하다. 연령도 20대부터 70대까지 고루 분포되어 있다. 지난 3월 초에 MBC 스페셜 다큐 <행복한 부부, 이혼하는 부부>가 방영된 후에는 고학력층이 두드러지게 많아졌다. 아마 MBC 스페셜 다큐가 부부 문제를 과학적 연구 결과에 근거를 두고 접근했기에 그들에게 설득력이 있어 보였던 모양이다.

다큐를 보고 필자를 찾은 어느 검사는 그 프로그램의 사례자들처럼 이혼을 생각할 정도로 심각했던 부부 사이가 불과 한 두 달 만에 그렇게 빨리 좋아질 수 있는가 물었다. 필자의 답은 한결같다. ‘얼마나 빨리 좋아지는가는 얼마나 처방대로 잘 실천하는가에 달렸지요’라고. 그러면 또 질문을 한다. 본인은 잘 하고 싶은데 배우자가 노력할 기세를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말이다. 그러면 변하고 싶은 분부터 변하시라고 권한다. 가족은 유기적인 시스템이라 한 쪽이 변하면 나머지도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부 싸움의 원인을 제대로 아는 게 관건

행복한 결혼을 하는 비결을 언급하기 전에 먼저 무엇이 불행한 결혼과 이혼을 초래하는지를 알아보자. 원인을 잘못 알면 처방이 독약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부부 치료에서는 진단만 정확히 잘 해도 성공의 50%는 보장받는 셈이라 한다. 대개 못 살겠다 하는 부부들은 그 원인을 성격 차이로 돌린다. “아내의 성격이 꽉 짜여진 네모 돌판 같아요. 빈틈이 없어서 숨이 막힐 지경인데 어찌 살겠습니까?” “남편은 우유부단하고 번번히 약속을 어겨요. 내가 약속 안 지키는 걸 그렇게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각서까지 써 놓고 어기니까 어떤 땐 날 약 올리려고 이러나? 하는 생각마저 들어 화가 치밀어요.” 부부갈등의 원인을 성격 차이로 본다면 어떤 해결책이 나와야 할까? 성격을 바꾸던지 억지로 참아야 할 것이다. 공연히 성격 탓 하다가 인격을 비난하게 되고 누가 잘 했냐 못 했냐, 누가 더 잘 났냐 못 났냐로 확대되다 급기야 부모 탓, 조상 탓까지 나오기 십상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격차이보다는 가치관이나 양육방식이 달라서 살기가 힘들다고 한다. 집집마다 부부 싸움 18번같이 매번 등장하는 레퍼토리가 있게 마련인데 흔히들 서로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보자. 필자를 찾은 어느 30대 가장은 아내가 자녀들을 너무 “잡는다” “몰아친다”고 한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아이의 숙제나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함께 노래방 가자, 찜질방 가자, 여행가자 하면서 시간 낭비하는 게 못마땅하다. 이 부부의 싸움은 딸의 돌 무렵부터 시작되어 10년 내내 반복이다. 지금같이 서로 누가 옳으냐 그르냐, 누가 잘났냐 못났냐로 다툰다면 이들의 갈등은 손주가 태어난 후에도 지속될 지도 모른다. 아이 이름만 달라졌을 뿐 부부는 머리가 검었을 때나 대머리가 된 후나 같은 말만 반복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이혼 사유라고 알고 있는 위의 사항들이 놀랍게도 이혼의 직접 요인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트맨 박사는 부부 싸움의 내용이 외도, 폭력, 돈 문제, 고부갈등, 술 문제 같이 심각한 것이든 내복 갈아입기 같이 사소한 것이든 부부의 불행감이나 이혼과는 상관관계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성격 차이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결혼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 외도? 폭력? 고부갈등? 돈 문제? 성문제? 가트맨 박사는 부부 갈등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부부 싸움의 ’방식‘이 문제라고 한다. 대화 방식에 비난, 방어, 경멸, 담쌓기가 담겨 있으면 그 부부는 15년 이내에 이혼할 것을 92%의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지난 35년 동안 3천쌍 이상을 추적 조사한 이 방대한 연구의 결론은 ‘말과 행동을 바꿈으로써 부부 관계가 개선되고 결혼의 행복도가 증가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부부들은 오늘도 대화 속에 위험인자를 마구 쓰면서 왜 우리 부부는 이렇게 살기가 힘들까 하고 엉뚱한 해답을 찾으려 할지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는 좀처럼 부부 싸움을 하지 않는다”고 자랑삼아 말하는데 전문가가 볼 때 이들은 사실 이혼으로 가는 지름길인 담쌓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담쌓기는 서로 눈 마주치지 않기, 말 안하기, 상대가 말하는데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들여다보기, 전화기 꺼놓기, 집에 늦게 들어오기, 각방쓰기, 외박하기, 가출하기, 별거하기 등으로 다 이혼이라는 종착역을 향한 여정길이다.

전문가의 조언

“잘 살아 보자고 한 언쟁이었는데 남편이 더 이상 너랑 살기 싫다면서 이혼하자고 할 때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하는 부인에게 필자는 언쟁할 때 부드럽게 시작했느냐고 묻는다. “그야 뭐 화가 나면 감정이 격해져서 몇 번 소리를 지른 적도 있지요. 매번 그런 건 아니에요. 남편이 좀 듣는 척이라도 하면 큰소리를 낼 필요가 없는데 마이동풍이니 큰 소리가 안 나오겠어요?”

가트맨 박사에 따르면 부부 대화의 80%는 아내 쪽에서 먼저 시작하는데 이 때 아내의 음성이 크고 격하면 이혼할 확률이 94%로 더 올라간다고 한다. 그 이유는 뇌에서 공격을 감지하는 아미그달라 (소뇌 편도핵)가 남자의 경우 훨씬 민감하고 취약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큰 목소리는 자칫 “공격”으로 인식되고 그러면 즉각 변연계의 뇌하수체에서 아드레날린과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어 온 몸에 근육이 긴장되고 싸울 거냐, 도망갈 거냐의 반응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을 “감정의 홍수”라 하는데 여성도 그럴 수 있지만 여성의 뇌는 남자의 뇌보다 공격에 대해 훨씬 유연하고 복합적으로 반응할 뿐 아니라 평정 상태로 돌아오는 회복 시간도 빠르다. 여성이 부드럽게만 말을 시작해도 이혼으로 가는 길을 크게 차단하는 효과를 본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혼을 막기 위해 남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책은 무엇일까?

”열심히 일해서 월급 통장까지 다 아내에게 주고 밖에서 한 눈 팔지 않고 술 담배 외도 따위로 아내 속 썩이지 않았으면 남편 노릇 잘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아내는 맨날 못 살겠데요. 나랑 대화가 안 되고 숨이 턱턱 막힌다니 도대체 뭘 잘못했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하는 남편들에게 주는 가트맨 처방은 다음과 같다. ”아내의 영향력을 받아 들여보라.“ 아내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라니. 아니, 이사 하는 것, 아이들 학원 정하는 것, 생활비 쓰는 것 등을 죄다 아내가 알아서 하게 맡기는데 더 이상 무슨 영향력을 받아들이라는 것인가?

아내의 영향력을 받아들이지 않는 말투는 다음과 같다. “제발 남편 좀 들볶지 마라” “ 당신이 알아서 한다고 그랬잖아” “하고 싶으면 너 혼자 해” “결론이 뭔데?” 이런 말을 듣는 아내는 존재가치를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고 마치 절벽 앞에 선 기분이라 산을 넘고 바위를 뚫어야 할 것 같은 투쟁정신이 고취된다.

반대로 아내를 무장해제 시켜주고 동지로 껴안아 주는 남편의 효과적인 대답은 다음과 같다. “그래, 한 번 생각해 볼게” 당신 말도 일리가 있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역시 당신이야“ ”당신이 말 안 해 줬으면 깜빡 잊을 뻔 했어“. 이런 말은 아내를 굴종시키거나 아내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아내의 영향력을 받아들이고 아내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태도이다.

행복한 부부들의 부부싸움 방식

이혼하지 않는 부부라 해서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극심한 불행을 느끼면서도 “내 사전에 이혼이란 없다”만 되뇌인다면 참 딱한 노릇이다. 기왕 살 거라면 행복하게 사는 게 좋지 않을까?

부부가 가끔 싸우면서도 행복하게 잘 사는 방법이 있을까? 가트맨 박사의 답은 ‘그렇다’인데 그 내용은 일반인의 예상과는 다르다. 행복의 비결은 부부 사이에 문제가 없다는 데 있지 않고 문제를 ‘어떻게 보고 대하는가’에 달렸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행복한 부부나 이혼하는 부부나 모두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문제가 69%나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한 부부들은 이 문제를 조심스럽게 다루면서 풀 수 있는 31%에 초점을 두는 반면에 불행하거나 이혼하는 부부들은 이 69%의 문제들을 가지고 지겹도록 싸우면서도 관계만 망친다고 한다.

지겹게 싸우는 부부 싸움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 싸울 때마다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 싸운 뒤 개운치 않고 분하고 억울하다

 한참 싸우다 보면 처음에 뭐 때문에 싸웠는지 모른다

 한 가지로 싸우다 이것저것 튀어나와 수습이 안 된다

 싸워봤자 상처만 나니까 차라리 안 싸우는 게 낫다

반대로 “쿨”한 부부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 인신 공격을 하지 않는다

 격한 감정을 식혀가며 논쟁한다

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 피할 말을 가려 한다

 끝나면 뭔가 시원하고 가까워진 것 같다

 새로운 싸움이 기대된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나 쿨 할 수만은 없다. 행복한 부부도 비난, 방어, 담쌓기는 종종 한다고 한다. (하지만 경멸은 좀체로 하지 않는다). 행복한 부부와 불행한 부부의 가장 큰 차이점은 화해시도를 하느냐에 달렸다고 한다. 다시 말해 행복한 부부는 비난, 방어, 담쌓기를 했을 때라도 금방 화해시도를 한다는 것이다. 화해시도란 싸움 도중 감정이 격해질 때나 심한 언행을 했을 때 싸움이 더 크게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 일종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불행한 부부들은 싸웠다 하면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않고 다 하는 반면 행복한 부부들은 말을 조심해서 잘 다듬은 다음에 하고 혹시라도 심한 말을 했을 경우 담쌓기를 하는 대신 화해시도의 언행으로 금방 상처를 씻어낸다고 한다.

대기업에서 강의를 하다가 화해시도의 중요성을 말하면 이런 요청을 자주 받는다. “충분히 공감이 되고 머리로는 다 잘 이해가 되지만 막상 표현 하려면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집에 가서 바로 쓸 수 있도록 좀 더 구체적으로 가르쳐 달라.”직장의 성공을 위해 컴퓨터와 영어를 배우듯 가정의 성공을 위해서도 효과적인 대화법을 배우겠다는 의지가 매우 고무적이다. 다음은 화해시도가 되는 효과적인 표현 방식이다. 영어 단어 외우듯 적어서 가방 속에 넣고 다녀도 좋고 냉장고 문에 붙여 놓고 자주 보면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다.

 내가 이만큼은 양보할게

 (당신한테) 인정 못 받는 기분이 들어

 그 말을 들으니까 기분이 좀 상한다

 좀 더 부드럽게 말해주면 좋겠어

 큰그림에서 보면 이 문제는 그리 심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

 그 일에 대해 내가 참지 못하고 폭발해서 미안해

 지금 말한 것 취소해도 되지?

 다시 한번 말해 볼게

 어떻게 하면 좀 더 잘해 볼 수 있을까?

 당신의 말은 이건가?

 당신이 날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 부드럽게 말하고 싶은 데 잘 안 돼

 감정이 끓어오르는 것 같아. 잠깐 쉬자

 사랑한다고 말해 줄 수 있겠어?

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 우린 지금 주제에서 너무 벗어난 것 같아

 난 이것이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해

 내가 잘못한 것은...

 당신의 관점도 일리가 있어

 장말 좋은 생각이네

 우리 생각은 그러니까 .....란 말이지?

돈과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못 먹는 술도 마셔야 하고 서툰 노래 솜씨를 연마하기 위해 노래방 레퍼토리를 암기하는 대신 이런 부부 대화를 입력해 놓고 때때로 사용해 보라. 놀랍게도 꽉 막혔던 도로체증이 풀리듯 순한 감정의 교류가 소통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남자가 치사하게 이런 말까지 외우고 다녀야 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면 사회의 성공 못지않게 가정의 성공을 위해서도 노하우를 배우고 노력을 기울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혼 선진국의 시행착오

이 글 서두에 예로 들었던 50대 CEO는 직장과 가족을 완전히 분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역할은 직장에 충실하여 가족이 필요한 경제.사회적 안정과 지위를 획득하고 유지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하는 동안 가정이 속으로 곪고 있어도 말이다. 하지만 이혼 선진국에서는 이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알고 있기에 이젠 직장과 가족을 하나로 보며 “친가족” 정책을 세우고 있다.

불과 한 달 전에 있었던 실화다. 미국 굴지의 대기업 간부들이 산타페라는 휴양도시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40대 중역의 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단다. 결혼을 좀 늦게 한 편인 그는 세 자녀를 두었는데 유치원생인 막내가 자전거를 타다가 좀 다쳐서 병원에 가야한다면서 집으로 빨리 오라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 회의를 다 못 마치고 서둘러 떠나려고 했다. 산타페에서 집까지는 자동차로는 꼬박 20시간, 비행기로 약 세 시간이 걸리는 장거리다. 아들의 생명이 위독한 지경이 전혀 아니었고 놀다 흔히 다칠 수 있는 상황이었음을 장본인도 잘 알았지만 ‘아내가 오라면 간다!’는 그의 행동에 그 회사 회장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한국 같았으면 아마 회의장 문을 나가기도 전에 해고령이 떨어졌을 지도 모른다. 회사를 뭐로 보나? 그 따위 정신으로 무슨 일을 한다고? 공과 사를 구분할 줄 모르는 얼간이 아니야? 아니, 대체 그 아내란 여자는 간도 크지...

하지만 놀랍게도 그 회사 최고 CEO는 이 중역의 말을 듣고 선뜻 허락을 해 주었을 뿐 아니라 회사 전용 비행기를 타고 가라고 선처를 베풀었다고 한다. 한 시라도 빨리 가족에게 가보라면서...이런 일이 극히 예외적인 일일까? 아니면 원래 부자들이니까 이런 데 관대하기 때문일까?

아니다. 미국에서도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이런 일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CEO라 하면 천문학적 연봉을 주는 만큼 철저히 “부려먹는다”는 기업 정신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50%의 이혼율에 무방비적이던 기업이 큰 돈 들여 어렵게 스카웃해 온 우수한 인재들이 사기가 떨어지고 생산성이 크게 줄거나 잦은 실수와 결근 등으로 회사의 애물단지가 되는 일이 잦아 원인을 조사해 보았더니 불안정한 결혼 생활이나 이혼 때문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에 미치도록 몰두하거나 회사에 혹독하게 충성한 결과 가정생활이 희생되고 이혼을 했을 경우 기업으로서 손익을 장기간 연구해 보았더니 이만저만한 손실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방대한 연구에 근거한 “친가족” 정책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개인주의와 프리섹스를 구가하던 이혼의 왕선배격인 미국과 유럽에서 이제는 서로 앞다퉈가며 ‘가화만사성’을 내세우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연구들이 한결같이 결혼의 중요성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최고간부 뿐 아니라 일반직이든 전문직이든 이혼을 할 경우 그 시점부터 원래의 생산력이 대략 반으로 뚝 떨어져 원상태로 회복되는데 평균 10년이 걸린다. 또 행복한 결혼은 육체적 건강을 증진시켜 주기에 회사로서는 의료보험 부담금이 줄어들고, 정신적 건강을 증진시켜 주기에 집중력, 의욕, 창의력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이런 신빙성 있는 근거를 무시하고 아직도 가족보다 일을 앞세운다는 개인이나 기업은 매우 근시안적이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제는 결혼과 가족을 중요시 하지 않는 개인이나 기업은 장기 성공을 할 수 없다는 신념이 상식적이다.

친가족 정책은 개인의 노력 뿐 아니라 국가와 기업이 공동 협력하고 있는 추세다. 그래서 애초에 직원을 뽑을 때부터 부부 사이가 원만한가를 살필 뿐 아니라 일단 뽑은 뒤에도 육아 문제를 해결해 준다거나 맞벌이를 할 수 있는 여건을 해 준다던가 하는 ‘친가족적 배려’를 해준다. 기업 뿐 아니라 정치가들도 친가족 정책에 앞장서야 표몰이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부시 대통령은 친가족 정책을 내세워 재선에 당선되었다 할 정도로 미국 대중에게 결혼과 가정은 주요안건에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개인주의를 생명처럼 여기던 나라가 결혼과 가족 살리기를 국책으로 삼을 만큼 방향 전환을 한 것이다.

우리는 이혼 후발주의 행운을 가졌다고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미 선진국에서 숱한 시행착오 끝에 연구에 연구를 거쳐 얻어낸 행복한 결혼을 하는 방법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엄청난 개인적, 기업적, 국가적 비용을 치르고서 이제야 결혼과 가족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는 유럽과 미국보다 훨씬 빨리 회복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