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15년 된 한 40대 주부의 이야기다. 외식을 하게 되면 남편 옆자리를 놓고 자신과 시어머니, 아이들까지 민감하게 신경을 쓰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혼 초부터 시부모와 사이가 편치 않았는데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면서 시어머니와는 더욱 불편한 사이가 됐다고 한다. 시댁의 모든 모임에는 시어머니와 남편이 참석하고 자신은 거의 남편과 함께 간 일이 없다면서, 아직도 시댁에서는 낯선 타인이라고 한다. 얼마 전 오랜만에 남편, 시어머니와 함께 시댁 모임에 참석했지만 아무도 자신을 소개하거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구석에 앉아 있다가 왔는데, 그 뒤로 남편과 시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더 갖게 됐다고 한다. 이처럼 결혼한 지 오래 되었지만 아직도 소외감을 느끼며 시댁과 갈등하는 며느리의 이야기는 상담현장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례다.

이런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하는 분노와 소외감, 무시 당하고 있다는 억울함과 같은 감정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족 분위기상 이런 감정이 자연스럽게 표현되지 못한다. 더욱이 당사자도 적절하게 감정을 나타내는 기술이 부족하며 막연히 상대가 자신의 생각을 알 것이라는 모호한 기대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막연한 기대는 상대의 행동이 생각대로 되지 않았을 경우 의도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

위 사례의 경우 만약 며느리가 시댁모임에서 낯설고 어색하니 시어머니나 남편이 소개시켜줬으면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면 그날의 모임은 조금 더 편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가족의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가족원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이 자연스럽게 나타낼 수 있는 분위기를 부부가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또 상대에 대한 막연한 기대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대화기술을 익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갈등의 골이 깊어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 지 모르는 가족의 경우 상대의 말을 간섭이나 잔소리로만 여기게 되므로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전길양/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가족학 박사 (02)597-5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