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하에 2남 1녀를 둔 50대 초반 부인의 하소연이다. 이 부인이 디스크로 보름정도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퇴원해 집에서 쉬는 동안 우연히 막내딸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는데, 그 일기장에는 엄마의 병에 대한 걱정은 물론 가족이야기는 단 한줄도 없더라는 것이다.

엄마가 입원해 있는 동안도, 이것 저것 할 일이 많다는 핑계로 딸은 단 2번 잠깐 병실에 다녀갔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이 중년의 어머니는 가슴 철렁하는 허탈감과 함께, 대학에 다니는 딸이 야속하고 서운하기 짝이 없으며 배신감마저 든다고 했다. 이 부인은 자녀의 성장, 독립에 즈음하여 디스크라는 질병까지 앓게 되면서 상실감과 실망감을 수반하는 `빈 둥지 증후군'을 경험하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자식사랑은 사무치는 모정을 바탕으로 한 무조건적이고 본능적인 사랑이다. 그러나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은 결코 무조건적이 아니며, 따라서 보고 배우고 훈련해야 가능하다.

딸의 무심함은 부모의 이제까지의 양육방식의 결과물이라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 어머니는 딸을 명문대에 입학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희생을 감수하면서, 딸의 공부에 총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오로지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가르침 속에서 우리의 자녀들은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나 가족에 대한 배려의 마음을 기르지 못한 채 성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늦은 감은 있지만 이 어머니의 경우 딸과 사랑의 표현을 주고 받는 의식적인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 딸과의 공감대 형성을 위한 깊은 대화의 시간과 공유할 수 있는 활동의 장을 꾸준히 마련하면서 사랑의 표현방법을 훈련해 나갈 필요가 있다. 또한 딸의 독립을 격려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부모의 소망, 딸에 대한 기대 등을 조정해 나갈 필요가 있다. 어머니가 딸의 생활속에서 계속 1인자여야 한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는 한 이 어머니는 여전히 딸의 일기장을 슬그머니 들추어 보면서 계속 서운함을 느낄 것이다.(02)597-5135.김명자/한국가족상담연구소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