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인 유양도 이러한 가정에서 산다. 유양은 가정의 썰렁한 분위기를 견디다 못해 도움을 구해왔다. “집에 들어설 때 그 냉랭한 분위기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벌써 10년이 되어가요. 두 분이 큰소리를 내고 싸우시지는 않지만, 서로에게 할 말을 저를 통해서 하시고, 엄마랑 둘이 있으면 엄마는 아빠가 얼마나 책임감 없는 남편인지 저에게 하소연을 하고, 아빠는 아빠대로 엄마의 험담을 하시곤 해요. 제가 무남독녀이다 보니까 말 상대가 되어 드릴 수는 있지만, 서로 자기 편이 되어 달라고 하시는 얘기라 부담스럽고 괴로워요.”

유양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유양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고 현실적이었다. “두 분이 예전처럼 행복한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제일 좋지만, 그러기엔 부모님의 불화가 너무 오래됐어요. 부모님은 제가 결혼할 때까지 이혼은 하지 않을 거라고 하시지만, 저한테 상관 마시고 두 분도 각자 행복한 삶을 사셨으면 좋겠고, 저는 하루라도 빨리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유양의 부모가 이혼을 한다고 유양이 혼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유일한 자녀로서 유양은 부모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녀를 부부 사이의 관계에 개입시키는 것은 옳지 못하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 때문에 참고 산다고 하지만 역으로 그것이 자녀에게 상처나 부담스러운 짐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유양의 하소연은 비슷한 상황의 가정에서 살고 있는 많은 아이들의 솔직한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02)597-5135. 천혜정/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