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가 사랑의 전부는 아니잖아? 그녀는 방송국 PD, 나는 레지던트. 그러다보니 우리 부부가 맘 편히 만나는 건 보름에 한 번 정도밖에 안 된다. 게다가 둘 다 컴퓨터에 미쳐서 한번 앉았다 하면 날밤을 새기 일쑤. 어쩌다 둘 중 하나가 생각이 있어도 기다리다가 지쳐 잠들어버린다. 사실 나나 아내나 섹스보다는 자신의 시간을 더 많이 갖는 게 더 절실하다. 편안히 앉아서 음악도 듣고, 게임도 하고, 인터넷도 하고, 못 보던 책이나 비디오도 보고... 여가 시간이 생기면 이런 것들을 하고 싶어 안달이다. 그렇다고 우리 부부가 애정 없는 부부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하루에 한번 이상 전화하고 사랑한다는 표현도 자주 한다. 없는 시간 쪼개서 밖에서 식사라도 함께 하려고 무지 노력한다. 서로 얼굴만 봐도 이렇게 좋은데 시간 쪼개고 몸 축내며 꼭 그 섹스를 주기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섹스는 사랑의 표현이지만 사랑의 전부는 아니다. [이규영, 30세, 의사] 일 중독 남편 때문에 독수공방 중매를 통해 증권사에 다니는 신랑과 결혼했다. 명문대 출신의 유망한 직장을 다니는 건실한 청년이라는 그는 결혼상담소의 A급 신랑후보였고, 역시 A급 신부 보였던 나와는 궁합이 잘 맞는다고 했다. 그러나 4개월이 지난 지금 난 심각하게 이혼을 고려중이다. 남편은 소위 말하는 일 중독증의 전형적인 케이스였다. 결혼 첫날부터 사소한 말다툼으로 틀어진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쳐도, 4박 5일의 신혼여행 기간 중 딱 한번 관계를 시도한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 그나마 불발이었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후로는 아예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는 늘 회사 일로 바쁘고 일요일이나 공휴일도 끊임없이 회사 동료나 고객들과 전화통화를 하느라 밥 한번 편안하게 먹은 적 없었다. 밤에는 컴퓨터 앞에 매달려 있어 난 늘 혼자 잠들기 일쑤였다. 지난 달, 참다못해 병원을 찾았다. 혹시 이상 있는 남자가 아닐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결과는 이상 없음. 결국 그는 내가 싫거나 일 중독증에 빠져 가족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인 것이다. 출세와 돈밖에 모르는 그가 정말이지 정떨어진다. [조은미, 26세, 그래픽 디자이너] 가족같은 느낌인 걸 어째 나보다 9살이나 많고 형부보다도 세 살이나 많은 남편. 우린 직장에서 만났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 늘 부정에 굶주려있는 내게 남편은 상사로서, 윗사람으로서 참 따뜻하게 배려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우린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혼 후에도 때로는 오빠같고 때로는 아빠같은 남편에 대한 감정을 쉽게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그래선지 그와 섹스하는 일이 어쩐지 죄를 저지르는 것 같은(근친상간을 저지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몸이 위축되곤 한다. 처음엔 화도 내고 달래보기도 하던 남편은 결혼 1년만에 완전히 포기한 듯 싶다. 편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남편이 혹시 바람을 피우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안영희, 24세, 주부] 성 기능 장애로 어쩔 수 없어 감원이다 감축이다 삭감이다 갖가지 직장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중에 머리가 한 줌씩 빠지고 새치가 나날이 늘어가더니 급기야 성기능 장애까지 생겼다. 남들은 대기업 간부로 살아남은 내게 대단하다고 하지만 아직도 대기업 직원들은 감원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으니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잘리면 당장 먹고살 걱정부터 해야 하는 나로서는 성기능장애까지 온 지금 의욕이 완전히 상실된 상태다. 남자에게는 발기가 곧 삶의 의욕과 직결된다. ’스트레스성 장애’라는 판정을 받은 남편에게 부담이 될까봐 아내는 1년째 아예 방을 따로 쓰고 있다. 아내에게도 미안하고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한심하기도 하고. 스트레스에는 수면이 최고라는 말에 새벽에 다니던 영어 학원을 그만두고 수면시간을 늘렸다. 주말엔 회사 일을 접고 무조건 아내와 산에 오른다. 직장생활도 중요하지만 가정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생각에서 노력 중이다. [김은복, 44세, 회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