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아버지” 탈레스

“발 앞의 웅덩이도 못 보는 사람”
탈레스(B.C.624?~546)는 흔히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어느 분야에서건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은 그 분야에서 가장 존경받는 원조(元祖)이기 마련이다. 탈레스도 그렇다. 이미 그가 살아 있던 때부터 탈레스는 고대 그리스의 ‘칠현인(七賢人)’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현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유명인의 우스꽝스러운 실수는 흔히 재밌는 화젯거리가 되는 법,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에게도 오늘날까지도 일상인들의 가십(Gossip)거리가 되는 ‘위대한 실수’가 있다. 우주의 이치를 탐구하느라 하늘을 정신없이 걷다가 그만 발 앞의 웅덩이를 미처 보지 못하고 꼴사납게 넘어지고 만 것이다. 이를 본 트라키아 하녀는 큰 소리로 웃으며 비웃었다고 한다.
“우주의 이치를 탐구한다는 분이 발 앞의 웅덩이도 못 보다니요!”
‘철학의 아버지’를 완전히 스타일 구기게 만든 이 일화는 고상한 문제에 매달리느라 현실에는 오히려 어두운 철학자들을 비판할 때 흔히 인용되곤 한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 이야기를 오히려 철학자들의 진정한 면모를 자랑스럽게 내세우기 위해 소개하곤 한다. 발 앞의 웅덩이도 보지 못했던 탈레스처럼 철학자란 재판이나 흥정, 일상의 세세한 일에는 어리숙하고 둔한 사람일지 모른다. 그러나 철학자란 사람들이 어지간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해 보지 않을 삶과 세계에 진정한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럼으로써 이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삶을 더 가치 있고 보람 있게 만든다. 마치 클럽 활동 반을 정할 때 친구 따라 무작정 아무 반이나 들어가는 것보다 자신의 삶과 목표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반을 선택했을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듯이 말이다.
때문에 철학은 오래 전부터 엘리트들을 교육하는데 필수과목으로 여겨져 왔다. 철학은 눈앞에 작은 이해에 매달려 흥분한 나머지 삶을 통해 이루려고 하는 본질적인 가치와 의미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게 해주기 때문이다. 크고 넓게 생각하여 세상의 의미를 탐구하고 바람직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작업, 탈레스는 바로 철학의 임무를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준 사람이었다.

“밀레토스-철학의 탄생지”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데에는 주변 환경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탈레스는 밀레토스 사람이다. 밀레토스는 그리스 본토가 아닌 소아시아(지금의 터키 지방) 개척지에 있던 도시 중에 하나였다. 흔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보다는 새롭게 형성된 마을의 분위기가 보다 더 자유로운 법, 밀레토스에서는 인습에 얽매인 그리스 본토의 도시서보다는 훨씬 자유분방한 생활과 사고가 이루어지고 이었다.
뿐만 아니라, 밀레토스는 다양한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항구였으며 매우 부유한 도시이기도 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사이의 무역 중심지로 물자가 풍부했고 엄청난 부자들이 많았다. 아마도 밀레토스의 분위기는 지금의 뉴욕(New York)과 비슷했을 듯싶다.  
철학은 바로 이러한 환경 속에서 태어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을 할 수 있는 조건으로 ‘여유(leisure: scholē)’를 든다. 생계에 쫓기는 사람은 삶과 세상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여유가 없다. 하루하루 닥치는 일들을 해결하기에도 벅차기 때문이다. 또한, 생각한다고 해도 찌든 일상에 너무 얽매어있어 아무래도 현실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따라서 삶과 세상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고민하기 위해서는 급박한 일상생활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는 물질적, 정신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밀레토스의 경제적 성공은 이러한 ‘여유’를 가능케 했다.
나아가, 항구 도시 밀레토스는 상업의 중심지로 자유롭고 합리적인 생각이 중시되는 곳이었다. 항해를 하기 위해서는 기상과 항해술을 바탕으로 한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또,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상대로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는 자신들만의 관습에서 벗어나 보다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당시까지 그리스 사람들은 보통 세상사를 신들에게 기대어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밀레토스 사람들은 스스로 냉철하게 생각하여 일어난 일들의 원인을 밝히고 해결책을 구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이처럼 철학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증명과 납득할 만한 근거를 통해서만 세상을 이해하려는’ 밀레토스 사람들 특유의 비판적인 태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거의 없다. 현대 학자들이 탈레스의 태생과 성장 배경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란 고작 조상이 페니키아 사람이라는 점, 그리고 밀레토스의 명문 집안 출신이라는 것 정도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료(史料)가 많이 사라진 때문도 있지만, 탈레스가 죽은 지 불과 150년 뒤 사람인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그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는 사실을 보면 아예 처음부터 그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았던 듯싶다.
그가 ‘칠현인’ 중에서도 으뜸이었음에 비추어 보면 적은 기록이 의외라고 여겨질지도 모르겠지만, 당시 지식인의 생활태도에 비추어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요새 ‘저명한 지식인’이란 TV 등 각종 언론 매체에 부단히 얼굴을 드려 밀고 떠드는 사람이지만, 당시의 지식인이란 오히려 ‘침묵’을 미덕으로 여기던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거의 말을 하지 않다가 한 두 마디 던진 말들이 곧 ‘금언(金言)’이 되어 여러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TV, 라디오 등이 전혀 없었을 뿐더러 글로 적을 종이조차 없던 시대였으니 긴 주장보다는 차라리 한 두 마디의 의미심장한 말이 더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이들의 사상에 대한 기록이 한 두 문장에 경구들뿐인 것도 당연하다.
탈레스도 이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 ‘철학의 아버지’라는 그가 남긴 철학적 주장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이란 “만물의 근원(Principle: archē)은 물이다.”와 “지구는 물 위에 떠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신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세 마디뿐이다.
이 중에서 그를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한 것은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는 주장이다.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에 와서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는 주장은 의미 있을 것도 없는 엉터리 주장이다. 그러나 철학사적으로 볼 때 이 주장은 매우 가치 있다. 눈에 보이는 여러 사물과 변화를 넘어, 세계는 과연 무엇으로 되어있을까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처음으로 던졌다는 사실 때문에 그렇다. 드러난 것 이면에 있는 본질적인 모습과 의미를 탐구하고  밝히는 것이 곧 철학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물론 종교도 세상이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해답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철학은 자기의 주장을 던져 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와 합리적인 근거에 비추어 ‘증명’해 보이려 한다는 점에서 종교와 다르다. 종교는 ‘신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라고 ‘선언’해 버리고 사람들에게 믿을 것을 권유하지만, 철학에서는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내놓지 못하면 어떤 주장도 받아드려지지 못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탈레스도 ‘만물의 근원이 물임’에 대해서 나름대로 증명을 시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자신도 잘 몰랐다. 따라서 학자들은 탈레스가 제시했을 법한 증거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곤 한다.
하나는, 탈레스의 ‘이집트 유학 경험’에서 근거를 찾는다. 당시 이집트는 천문학, 기상학, 수학, 항해술 등 모든 분야에 있어서 문화 선진국이었다. 유능한 젊은이는 시대의 중심으로 모여드는 법, 탈레스도 젊은 시절 이집트에서 배우고 활동했었다. 이집트는 풍요로운 나일 삼각지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리고 삼각지의 비옥한 토양은 나일 강이 해마다 얼마만큼의 양으로 범람하여 대지를 적셔주었는가에 의해 결정되었다. 따라서 이집트에 배어있던 물에 대한 숭배가 자연스럽게 그의 의식에 젖어들었으리라 추측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그리스의 창조 신화도 물(오케아노스)에서 출발하지 않는가!)
다른 학자들은 그 근거를 일상에 대한 탈레스의 주의 깊은 관찰에서 찾는다. 탈레스는 신화에 기대어 세상을 해석했던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세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만물의 근본 원리를 찾아보려고 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성실하게 관찰해본다면,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고 결론은 당연하다. 주변에 생명 있는 모든 것의 성장과 생명을 좌우하는 것은 물이며 습기를 잃은 모든 것은 죽고 말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하나도 중요할 것이 없다. 철학사적으로 의미 있는 것은 오직 그가 이성적으로 생각하여 사회적으로 퍼져 있는 믿음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성실한 관찰 결과를 종합하여 세상의 근본적인 모습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는 ‘철학적’인 사고를 했다는 사실 뿐이다.

“철학자도 돈을 벌 수 있다.”
탈레스는 만물의 근본 원리를 깊이 있게 탐구했던 철학자였지만, 결코 탁상공론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대단히 ‘실용적인 지식인’이었는데, 그 ‘실용성’은 언뜻 보기에 현실 생활과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수학, 지질학, 천문학 등과 같은 ‘순수학문’에서 나왔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일찍이 트라키아 하녀에게 망신을 당한 탈레스는 ‘철학자도 돈을 벌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사업’을 벌였다고 한다. 한 겨울에 올리브기름 짜는 기계를 모조리 싼 값에 빌려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올리브 수확도 없는 한 겨울에 기름 짜는 기계를 빌리는 덜 떨어진 인간에게 비웃음을 보냈다. 하지만 이듬해 큰 풍년이 들어 기름 짜는 기계의 임대료가 크게 올라 탈레스가 큰 이익을 보자, 사람들은 그의 식견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또, 탈레스는 그때 까지 큰곰자리를 보고 항해를 하던 그리스 뱃사람들에게 작은곰자리가 방위를 파악하는데 있어 더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사실은 천문학과 기상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나아가 그는 기하학과 수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피라미드의 높이를 재는 일을 그림자의 높이와 실제 사물의 크기를 비교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해냈다고 한다. 이로써 그는 배 사이의 거리도 측정할 수 있었다.
탈레스는 정치적으로도 대단한 수완을 발휘하여 페르시아의 위협에 맞서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연합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고한다.
그러나 탈레스 당시의 그리스인들은 흔히 유명한 발명품들은 자신이 이름께나 들어본 적 있는 현자가 한 것이라고 단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이런 모든 일들을 탈레스 자신이 혼자 다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심해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분명히 탈레스는 결코 지금의 직업 철학자들처럼 일상생활에 대해 무지하고 무능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를 지금의 관점에서 평가해 본다면, ‘돈 못 버는 학문’으로 여겨져서 학생들이 외면하는 ‘순수학문’이 어떻게 실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던 ‘실용적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보다 넓고 깊게 생각해 보기”
탈레스의 삶에 대한 기록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알려진 사실이 없다. 다만 후대에 지어진 한 풍자시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그는 운동 경기장에서 관람하던 중 숨을 거둔 듯하다. 더위를 먹어서 죽었다는 설도 있지만 군중에 깔려죽었다는 주장도 있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초연하게 독배를 들이킨 것에 비하면,  ‘철학의 아버지’의 죽음은 그다지 ‘철학적이지도’ 극적이지도 않은 듯하다.
하지만, 탈레스는 그의 생애를 통하여 여전히 우리에게 ‘아버지’가 하는 것 같은 훈계를 주고 있다. 많은 현대인들은 ‘정신적 근시’의 상태로 살아간다. 눈앞의 작은 이익, 끝없는 경쟁 속에서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가지만, 정작 세상의 의미는 무엇이고 어떤 것이 진정 바람직한 삶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는다. 그 결과 치열한 노력과 경쟁을 통해 성공을 거두어도 대개 돌아오는 것은 공허함과 허탈감뿐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선진국의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가 후진국 사람들보다 훨씬 낮다는 사실은 ‘정신적 근시’들의 영리함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는 아버지답게 이런 우리들에게 충고를 건넨다. 치열한 일상에서 한 발 물러서 보다 넓고 깊게 세상과 삶에 대해 통찰해 보라고 말이다. 무엇이 진정한 세상의 모습인지를 고민해보고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때, 우리는 다람쥐가 쳇바퀴 위에서 경쟁하는 듯한 생활에서 벗어나 진정 의미 있는 삶을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는 우리에게 철학적 반성의 가치를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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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복(서강대 철학과 박사과정, 중동고 철학교사)이 작성한 이 원고는 "고교 독서평설(지학사)" 2002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