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믿기지 않는 상황이 십 여년 전 이 땅에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깊숙이 파고 들어가 보면 이조시대라 해서 모든 여성이 정조대를 차고 은장도를 품에 안은 채 잠자리로 들지 않았음을 깨달을 수 있다. 

오히려 더 개방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얼핏 드는데, 그 증거가 신윤복의 그림. 그의 거침없는 붓끝을 좇아 시선을 옮기다 보면 우리가 만나게 되는 건 하얀 화선지 위로 질펀하게 펼쳐진 풍만한 여인의 육체와 그녀의 몸 위로 실린 남정네의 육중한 무게. 그리고 그들이 벌이는 정사이다. 미루어 짐작컨대 그들의 자유로움은 지금의 우리네로도 따라잡기 힘든 신의 경지가 아니었나 싶다.

그랬으니 말이다. 출산의 왕성함을 알리기 위해 가슴을 드러낸 저고리를 입고 다니던 우리네 조상들이 '저 어제 남자와 키스했어요. 임신한 게 아닐까요?'라는 상담을 진지하게 하는 후손의 몰골을 보았더라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런 한심한 것들...'하며 혀를 찰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누굴 탓하겠는가. 성에 대한 무지가 빚어낸 일인 걸. 그리고 그 땐, 10여년 전엔, 100%라고 말할 순 없지만 상당수의 여자들이 그랬었다. 키스했다고 임신이 아닐까 생각했다는 건 좀 억지일 지 몰라도.

그런데 말이다.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세상이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이제 여성동지들은 아늑한 카페에 모여 앉아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만난 지 100일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키스를 안 하는 거 있지. 걔 좀 이상한 것 같애'라는 말과 함께 몸과 마음을 한껏 열어 재낀 채 성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교환을 나누고 있다. 열린 정보 속에 싹트는 지식이랄까.

10년 전만 해도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합법적인 만남이 인정되는 대학이란 델 들어가 처음 대하는 술좌석에서, 알고 보면 나보다 더 나을 것도 없는 동급생 남학생들이 성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한 포즈로 쏟아내는 음담패설의 홍수 속에 정신을 빼앗긴 채, 국어사전에도 없는 그들의 용어(예를 들어 장화 같은)를 이해하려 애쓰던 그 시절에는 말이다. 그땐 콘돔의 용도에 대해 알아내는 데만도 수년씩 걸렸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그런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면 생리대 자판기와 함께 콘돔 자판기가 설치돼 있는 그야말로 기막힌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우리가 성기에 대해 좀 거론한다고 해서 뭐 큰일 날 것도 없을 것 같다. 성기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면 좀 촌스러운 느낌이 들까? 그러면 페니스라고 부르지 뭐. 이것 역시 사대주의적 발상인데 어쨌든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가장 큰 수단으로 인식되는 그 단어가 요근래 스크린 속에서 유난히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것도 크기와 기능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부연 설명을 옵션처럼 달고 다니며 말이다.

오죽하면 가끔이긴 하나 해외토픽 난에 '어느 민족의 성기가 가장 크더라'라는 따위의 기사가 실리겠는가 말이다(참고로 그 결과를 알려주면 아랍인의 성기가 가장 크고 그 다음이 흑인이다). 

난자가 선택한 정자의 유전인자에 의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크기를 결정 받게 되는 페니스. 그로 인해 남자들, 특히 앞에서 말한 아랍인이나 흑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페니스의 크기가 작은 동양인들은 성장기 내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게 된다.

위풍당당히 남탕 안으로 들어섰던 남자가 풀이 죽어 그 문을 나선다면 그건 감히 라이벌이라 말하기조차 힘든 상대를 탕 안에서 만난 때문이다. 그 증거를 확인하고 싶다면 <억수탕>이 좋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그런 그들의 모습을 목격한다는 건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 남자가 내 남편이라면 더더욱.

그런 연유로 <부기 나이트> 같은 영화가 세인의 관심 속에 제작되고 흥행 선두를 지켰는지도 모른다. 30cm나 되는 페니스를 가진 포르노 배우의 일생을 담았다 해서 화제가 된 영화 <부기 나이트>. 

한때 포르노 영화계를 풍미하다 잊혀진 한물 간 에로 배우 덕 더글라스를 다시 일으켜 세움으로써 신화 재창조를 이룩한 이 영화에서 관객은 촌스럽지만 정겨운 더벅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넘긴 왜소한 체구의 시골 총각을 만나게 된다.

방안 가득히 붙여놓은 핀업 사진 속 스타들의 웃음을 바라보며 '기다려. 내가 곧 그곳으로 갈 테니'하며 한껏 거만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그러나 아무리 뒤적여봐도 매력이라곤 털끝만큼도 찾을 수 없는 총각을....

그가 그토록 자신 있게 거울을 바라보며 큰 소리 칠 수 있는 건 무엇 때문일까? 놀랍게도 그리고 황당하게도 그의 비밀무기는 하복부를 타이트하게 조인 블루진 안에 숨어 있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몸에 착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TV에 나와 기다란 마이크 대를 부여잡은 채 그의 아랫도리를 흔들기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무덤까지 갖고 갈 침대 안 비밀로 인식돼 왔던 남성의 심볼 마크. 

남편을 출근시킨 여인네들의 음담패설 속에서나 등장하곤 하던 페니스가 그의 성공의 키였던 것. 페니스 크기 하나로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 오다니. 

등급외 전용관이 없는 관계로 적나라한 영상을 만나지는 못하지만 <부기 나이트>는 페니스를 둘러싼 수많은 대화와 논의, 혹은 그의 상대역을 맡은 여배우들(포르노 배우였기에 영화 속에서 그는 항상 포르노 영화를 찍고 있다)이 한결같이 내지르는 괴성을 통해 안보고도 본 듯한 인상을 남기는 약간은 사기 같은 영화이다.

이제 관객의 관심은 오직 하나 '대체 얼마나 크길래?'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은 영화의 라스트에 나온다. 화면을 가득 채운 덕의 페니스. 일명 번데기라 불리는 덕의 비밀무기가 관객 앞에 알몸을 드러낸 것. 그러나 페니스에 대한 과대한 집착은 상대적 의기소침을 유발시켜 오히려 건강한 성생활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정신과 의사들이 누누이 말하는 '페니스의 크기는 성생활에 있어 중요한 게 아니다'를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그건 가진 자들의 여유일 뿐. 막상 내가 그 입장에 처하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풀몬티>의 불쌍한 남자들처럼.

남 보다 유난히 잘난 것은 없지만 그럭저럭 남들 하는 것만큼은 해나가던 영국 중소도시의 근로자에서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한 중년의 남자들. 그들의 몸이 혼란이란 늪 속으로 던져진 순간 그들은 고개숙인 남자가 된다. 

이제 어쩐다지. '아빠의 청춘'을 외치며 월말이면 자랑스럽게 흔들고 들어가던 월급봉투가 없어진 이상 이제 내가 설 곳은 어디지? 더 이상 젊지 않은 몸은 나이와 함께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비대해졌고 그 덕에 그렇지 않아도 작은 페니스가 더욱 볼품없어진 지 오래이다.

오그라든 페니스로 인해 자신감을 빼앗긴 그들은 아내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잠자리를 피하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이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풀몬티>의 중년 다섯 명은 멋들어진 반전을 펼칠 줄 아는 지혜를 펼친다. 

'어차피 알몸으로 태어난 세상 알몸으로 다시 시작하자'인데... 말로 푸니 그럴 듯 하지 그 실체는 스트립쇼이다.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으니 사업 밑천이라도 마련하려면 스트립쇼를 하는 수밖에. 누굴 상대로? 그야 당연히 여자지. 그다지 잘날 것도 없는 남자들의 알몸을 보러 부러 돈을 내고 어느 남자가 오겠는가?

물론 특별한 성향을 가진 남자들도 있게 마련이다. 
그 덕에 <포스 오브 네이처>의 벤 애플렉은 여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미래의 신부가 기다리는 사바나로 가기 위해 오른 비행기가 난폭한 폭우와 만나면서 비상착륙하고 그 바람에 한 팀이 된 산드라 블록이 정상적인 생활반경을 습득한 여자가 아닌 탓에 난생처음 세상의 이면을 구경하게된 그가 마지막 수단으로 여비를 벌기위해 찾아간 곳이 바로 게이바였던 것. 그곳에서 그는 페이시스의 노래에 맞춰 섹시한 포즈로 그의 아랫도리를 감싸고 있는 옷가지들을 하나둘 벗어 재끼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건 특별한 경우이고 대부분의 남자들이 집 이외의 특별한 곳에서 그들의 허리 아랫부분을 노출시키고자 하는 때는 합법적인 시스템 하에서의 샤워실을 제외하곤 사랑하는 여자가 기다리고 있는 은밀한 장소일 것이다.

가끔은 오스틴 파워처럼 약간은 주책스러울 정도로 가리지 않고 자신의 성기를 노출시키고자 하는 인간도 있지만. 무엇이 그리도 자신 있던지 1969년에서 1999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점프인한 오스틴은 일반적인 첩보원이 갖고 있는 젠틀함과 신비로움, 그리고 냉철함 대신 상당한 푼수끼와 무절제한 성욕을 과시하며 그의 임무를 완수한다.

푼수인데다 여자만 보면 이성을 잃는 멍청이가 최고의 요원이 된다는 게 어떻게 가능하지? 간단하다. 악당을 맞아 100전 100승을 기록하는 그의 힘. 
그 힘의 비밀이란 게 그다지 볼 품 있지 않은, 두리뭉실한 그의 몸 아랫도리에 달려있는 페니스 안 모조이기에. 머털도사의 힘의 원천이 머리털이고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고 힘을 냈듯 그 역시 모조를 통해 최고의 첩보원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

재밌지 않은가? 신체 일부를 그것도 페니스를 이용해 이처럼 멋들어진 영화를 생산할 수 있다니 말이다. 그는 말한다. 내 영화는 섹스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섹스를 말한다는 건 다시 말해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과도 같다 라고. <오스틴 파워>. 

여기서 오스틴이 뿜어내는 성적 에너지는 우습지만 무시할 수 없는 에너지이다. 화려한 원색의상 사이로 내비치는 털복숭이 가슴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처음 보는 여자에게 추근거리는 그 느물거림 그리고 유치한 외모.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모든 여성은, 그것도 전문교육을 받은 킬러가 말이다, 그의 품안에서 배부른 고양이가 되길 자청한다. 모조의 매력에 무릎끓은 것.

이렇게 되면 모조란 게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데 잠든 번데기를 위한 투쟁을 선언한 우리의 젊은 친구 제임스는 아직 총각딱지조차 떼지 못했으니 걱정이다. 어느 세월에 오스틴처럼 발굴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신천지 구경을 하지 못한 페니스라면 당연히 갖게되는 신천지로의 동경. 
그 해소를 위해 애플파이 속에 페니스를 담가보고(믿기지 않지만 미국 10대들 사이에서는 애플파이가 여성의 질과 같은 느낌을 선물한다는 말이 떠돈다고 한다) 나 홀로 늦은 밤 포르노 영화를 보며 페니스를 고생시켜보지만 그런다고 욕구가 해소되는 건 아니다.

뼈가 없는, 그래서 평소엔 얌전하다 흥분만 하면 혈관의 팽창과 함께 불끈 위로 솟아오르는 페니스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비하시키는 것도 한 두번이지...
그러나 남자의 페니스와 여성의 음모가 드러나면 안 된다는 영화심의법의 완강함이 무너진 지금, 어쩌면 그들은 조금 더 자유로운 내일을 꿈꿀 수 있을런지 모른다. 
적어도 영화에서만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