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에게 "아기는 언제 낳을 거야?"라는 질문은 거의 빠지질 않는다. 아기를 낳을 때가 됐는데도 소식이 없으면 궁금증은 주위에서 더 심해진다. 의학적으로 내려지는 불임의 정의 역시 이와 무관하진 않다. 결혼을 하고 1년 이상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가졌는데도 임신을 못하면 '불임'으로 진단한다. 물론, 피임을 하지 않은 관계에 해당하는 정의다.

불임은 우리에게 그다지 익숙한 단어는 아니다.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한 술 더 떠 불임부부라 하면 여자를 먼저 의심하는 것도 은근한 불문율. 아기는 여자가 낳는다는 연상작용이 불현듯 작용하는 이유가 크다. 

아기를 못 낳아 소박 맞는 여자는 있어도 소박 맞는 남자는 없는 문화도 책임은 있다. 하지만 불임은 그저 먼 나라 이야기, 이웃집 이야기만은 아니다. 바로 내 집안의,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우리 나라 부부 7쌍 중 1쌍은 불임, 그 중 33%는 전적으로 남성에게 원인이 있다. 남녀 모두가 원인인 경우도 20%. 결국 불임에 대한 남성의 몫은 50% 이상이나 되는 셈이다. 이는 임신 가능한 인구를 1000만 명으로 잡을 때 50만 쌍이 불임, 그 절반은 남성에 의한 불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최근 삼성제일병원 남성불임클리닉을 찾는 불임남성은 한 달 평균 500명. 1995년 한 해만 시험관 아기 시술이 500여 건이나 있었다. 남성불임이 적지 않은 게 현실임을 알 수 있다. 불임의 탓을 무조건 여성에게 돌리는 것이 얼마나 시대에 뒤쳐지는 구시대적 발상인지도 확실해 진다. 

물론 불임을 부인 탓이냐 남편 탓이냐로 따지는 건 중요하지 않다. 자체가 어이없고 잔인한 책임전가일 뿐. 단, 불임의 안전지대에 군림하던 남성이 왜 불임지대로 전향했는지는 관심을 가져볼 일이다.

씨앗이 적다? 썩었다? 없다? 정자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는 어김없이 놀림을 받던 기억이 있다. 이유는 남성의 정자 때문. '정자'하면 이웃집 언니 이름을 떠올리기보다 남성의 그것을 먼저 떠올리는 이유?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자는 남성불임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장본인이다. 정자의 수가 적거나 이상한 경우, 아예 없는 경우 불임의 덫은 놓여진다.

그렇다면 정자가 어느 정도 협조를 해야 임신이 가능한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정상 정액의 기준은 이렇다.
정액 1cc당 4,000만 마리의 정자가 있을 것. 그 중 50% 이상은 운동성이 활발해야 하고 30% 이상은 모양이 정상이어야 한다. 이 기준이 절대적인 건 아니다. 자연임신을 위한 최저선일 뿐이다. 정자의 수는 정상인데 기형 정자일 때가 있다.

머리가 두 개인 정자, 꼬리가 두 개인 정자, 머리가 유달리 큰 정자들이 그렇다. 혹 기형 정자 때문에 기형아를 낳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참 잘못 알고 있는 것. 기형 정자는 수정의 '수' 근처도 못 따라 간다. 가는 도중 낙오병이 되어 불임의 원인으로 찍혀 버린다.

하지만 불임에 있어 정작 안타까운 건 정자가 없는 무정자증. 남자가 남자인 이유? 정자가 있기 때문이라면 약간은 억지일지 모르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흔히들 불임 남성을 씨 없는 수박이라고 한다. 

이 역시 불임 사실보다는 정자가 없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한 놀림일지 모른다. 
수가 적든 어떻든 정자가 있다는 사실이 부러운 이유이기도 하다. 

무정자증은 부고환이나 정관, 전립선 장애로 정자의 통로가 막혀 정자가 감금당한 폐쇄성 무정자증과 고환 자체에서 정자를 못 만드는 비폐쇄성 무정자증이 있다.

이외에도 불임의 원인은 다양하다. 내분비계의 장애, 사정장애, 고환이 음낭 내에 있지 않고 뱃속이나 사타구니에 있는 정류고환, 고환의 정맥이 늘어나서 꾸불꾸불한 덩어리로 만져지는 정계정맥류, 음낭에 물이 고여 있는 음낭수종 등이 그 예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원인도 모른 채 불임이라는 험하고 힘든 길을 걷고 있는 남성들도 있다.

내 탓이로소이다? 정자와 불임의 복잡 다난한 관계가 몸 안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몸 밖에서도 정자와의 교섭은 가능하다. 대신, 정자를 성나게 하지 말지어다. 

한 두 번 신문 읽고 TV를 본 사람이라면 환경오염이 정자를 감소시킨다는 사실은 너무도 식상한 소리. 하지만 식상함 뒤에 숨겨진 심각함은 줄어드는 정자 수와 늘어나는 불임환자로 확인되고 있다.

환경오염은 피할 수 없는 팔자소관으로 돌릴 순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정자를 망가지게 하는 것들이 있으니….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것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술, 담배, 스트레스. 성기 보호대를 오래 착용하거나 너무 자주 사우나를 하는 것도 정자는 싫어한다.

 정자는 더운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고환은 체온보다 2∼4℃ 정도 낮아야 정자를 제대로 만든다. 물론 일상 습관이 불임에 필요충분 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정자 수를 팍팍 줄일 수도, 기형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는 필요조건 정도는 된다는 사실.

하지만 막연한 기대감은 더 아픈 불임의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병원은 가능한 빨리, 부부가 함께 찾도록 한다. 불임은 누구의 탓이라 치부할 수 없는 두 사람의 문제인 까닭이다.

남성불임의 열쇠는 정자. 정액검사부터 시작한다. 정자의 수와 운동성, 기형의 유무 등을 알기 위해서이다. 정액은 48시간 정도 금욕을 한 후 2회 정도 사정하면 된다. 

단, 사정 전에 손과 성기는 깨끗이 씻는다. 정자는 처음 나오는 묽은 정액 속에 들어 있는 것이 가장 질이 좋다. 처음의 정액을 확실히 받아두는 게 좋다. 고환이나 음낭 등 생식기 이상이나 발기 불능, 조루 등도 숨기지 말고 상담해야 한다.

정자에 이상이 없으면 다음 단계는 특수 검사. 검사에는 고환의 크기, 모양, 요도 구멍 등을 보는 성기검사, 정자가 없거나 수가 적은 경우 정자의 생산기능을 알기 위한 혈중호르몬검사, 무정자증인 경우 음낭을 조금 절개하여 정관을 꺼낸 후 X-ray 촬영을 하는 
정관조영술, 고환조직검사, 전립선검사, 정계정맥류검사들이 있다.

검사는 지속되어야 한다 불임검사 결과 무정자증이라고 했다. 자연임신은 힘들어 시험관 아기를 결정했다. 이런 경우라면 불임이 유전적 문제에 의한 건 아닌지 반드시 검사를 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기형정자인 경우는 수정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

 하지만 염색체가 기형인 경우는 문제가 된다. 시험관 아기에게 유전자 기형이 전해질 수 있는 탓이다. 염색체가 기형인 경우 정상인은 0.38%로 유전이 낮지만 정자가 없는 경우는 13.7%, 정자가 적은 경우는 4.6%로 높았다는 보고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불임의 원인만을 알아내는 것이 검사의 끝은 아니다. 정작 중요한 건 임신. 임신에 성공하기 위해, 건강한 아기를 낳기 위해 빠짐없이 검사하도록 한다.

불임부부가 '아기를 낳았다'하면 시험관 아기나 인공수정을 생각하는 게 우리들 상식이다. 불임치료의 기본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자연임신을 시키려 하는 데 있음을 모르는 까닭이다. 땅이 척박하면 거름을 뿌리고 메마르면 물을 주어 스스로 싹을 틔우도록 하는 것, 불임의 근본적인 치료다. 불임이라고 무턱대고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아기로 해결을 하려 들면 안 되는 것이다.

정자의 수가 적거나 기형인 불임. 우선 스트레스나 약물 등의 신체적 문제를 치료한다. 그래도 문제가 되면 마지막 보루가 등장한다. 난자 세포질에 정자를 직접 주입하는 방법(ICSI). 튼튼하고 똘똘한 정자를 골라 난자에 직접 수정시키는 것이다. 이 방법은 인공수정이나 체외수정보다 성공률이 높아 최근 많이 사용되고 있다.

원인이 안타까운 만큼 치료 역시 까다로운 무정자증. 폐쇄성 무정자증은 정자가 지나는 통로에 이상이 있기 때문에 일단 길부터 닦는다. 도로 공사에 실패하면 정자흡입술이 있다. 정자흡입술은 부고환에 인공주머니를 달아 정자를 모은다. 

그렇게 잡은 정자를 난자에 직접 넣어 준다. 비폐쇄성 무정자증은 1년 전만 해도 치료방법이 없었다. 정자를 기증 받거나 입양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정자를 만드는 세포가 없거나 정자가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환 조직에도 생식 능력이 있음이 밝혀졌다. 고환의 원형세포를 잘라 난자에 넣어주면 임신이 되는 것이다.

시험관 아기의 성공률은 40∼50% 정도.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지만 여성의 나이가 젊을수록 유리하다. 비용은 250∼300만원 정도다.

봄부터 소쩍새는 울어야 한다 정자가 없는 불임부부도 또 하나의 자신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임신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란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무조건 믿습니다' 자세는 위험하다.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아기 자체에 임신의 성공을 높이는 건 아니다. 수정란을 여러 개 만들어 성공의 폭을 높이는 것일 뿐. 난자에 직접 정자를 넣어주거나 고환의 조직으로 수정을 하는 방법들이 대단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쉽게 시도해서는 안 된다. 

일단 몸에 손을 대지 않는 모든 방법을 찾아본 후 생각해 본다. 남성에게 있어 고환은 쉽게 떼어낼 수 있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정자를 만들어 내는 것 외에 남성호르몬을 분비, 남성을 남성이게 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남성불임에 있어 남성은 단순히 정자의 제공자가 아니다. 치료의 대상이다. 
불임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기다림'이라고 불임클리닉 의사는 말한다. 아이와 함께 아빠의 청춘을 목이 터져라 부를 수 있는 그 날을 위한 기다림. "웃으며 참으면 꽃이 된단다, 웃으며 부서지면 꽃잎이 된단다"라는 시 구절이 비단 낯설지 만은 않다.

도움말 : 서주태 삼성제일병원 비뇨기과 교수, 김현주 강남차병원 비뇨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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