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결혼을 하고 초등학생 아들을 둔 30대 전업주부가 상담을 하려고 찾아 왔다. 남편의 무관심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고, 권태기인지 남편을 가까이 하기도 싫고, 인생이 허무해서 더 이상 이렇게 보람없이 살기가 싫어졌다고 했다. 가장 속상한 일의 예로 언젠가 일요일날 밀린 집안 일을 해야 하는데 산에 가자고 해서 할 일이 많아 아이나 데리고 다녀 오라고 했더니, 그 후론 남편이 일요일마다 아들만 데리고 산에 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평소에 아내가 무얼하고 지내는지 남편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부인의 이야기만으로는 이혼할 정도로 심각하고 구체적인 단서가 발견되지 않았다. 상담자는 회사 일로 바쁘다는 남편을 아주 어렵게 만났다. 남편은 아내가 하고 싶다는 것은 다 허락해 주며 살았는데, 별 것도 아닌 문제를 가지고 여기저기 얘기해서 집안 망신만 시킨다고 언짢아했다.

사회생활에 찌들어 있는 남편을 아내가 이해하고 격려하는 것이 중요한 것과 같이 주부가 집에서 하는 일의 중요성을 남편이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남편은 아내의 일상생활을 간섭하지 않고 무심하게 지내는 걸로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자신의 존재 자체에 회의를 갖고 이혼까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남편은 상담 이후 가족에게 삶의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표현했다. 이혼하고 사회적인 일을 해야 인간다운 존재가치와 보람을 찾을 것이라고 갈등하던 그 전업주부는 현재 행복하게 아내와 엄마노릇을 하고 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보여주는 끊임없는 관심과 배려, 그것이 평범한 부부가 수십년을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이다.(02)597-5135. 옥선화/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 이사·서울대 교수